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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99년, 경기도 수원(水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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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19년 4월 15일 |
관련 사건 | 3・1운동, 제암리 학살사건 |
주요활동 | 1919년 4월 경기도 수원군 발안장터 3・1운동 |
포상훈격 | 1991년 건국훈장 애족장 |
1899년경 경기도 수원군(水原郡) 향남면(鄕南面, 현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堤岩里)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4월 5일 향남면 발안 장날을 이용하여 안상용(安相容) ・ 안진순(安珍淳) ・ 안봉순(安鳳淳) ・ 김덕용(金德用) ・ 홍원식(洪元植) 등과 독립 만세 시위를 주동한 강태성(姜太成)의 부인이다. 1919년 4월 5일 향남면 발안장터 독립 만세 시위에 참가하였다.
4월 5일 발안 장날에 주민들이 냇가에서 돌을 주워 주재소 주위로 날랐다. 이정근(李正根)이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자 시위대도 일제히 만세를 외치며 800여 명의 시위대가 모였다. 주재소 앞으로가 투석을 하자 주재소 순사들이 위협 사격을 가하였다. 그런데도 계속 돌을 던져 주재소 유리창이 깨졌다. 그때 수원에서 일본군 수비대 1개 소대 병력이 도착하였다. 수비대는 시위대를 칼과 총으로 진압하였다. 이날 발안 만세 시위 과정에서 일본군 수비대의 무력 탄압으로 3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4월 1일부터는 발안장터 주변 산 정상 80여 개소에 봉화를 올려 만세 운동을 이어갔다.
4월 15일 오후 한국인 순사보 조희창(趙熙彰)과 일본군 제20사단 39여단 79연대 소속 아리타 도시오(有田俊夫) 중위가 이끄는 1개 소대 병력 30명이 제암리에 들어왔다. 순사 1명과 군인 2명을 소대의 반대 방면에 배치해 퇴각로를 차단하였다. 순사보 조희창에게 마을을 돌면서 15세 이상 남자는 할 말이 있으니 제암리 교회로 모이라고 하고 입구에서 오는 사람마다 키를 재어 총 길이보다 작은 아이는 돌려보내고, 큰 사람은 교회로 들여보냈다. 하지만 열댓 명 정도밖에 모이지 않자 직접 찾아가 교회로 데려왔다.
사람들을 모은 아리타 도시오 중위는 교회 밖으로 나가서 세 번 날카로운 구령을 외쳤다. 그러자 일본군은 교회 안을 향해 총을 쏘고 불을 질렀다. 불은 바람을 타고 삽시간에 주변 집들로 번졌고 불이 붙지 않은 집은 일본군이 돌아다니며 불을 붙여 마을 대부분의 집이 불에 탔다. 이 광경을 언덕에서 지켜보며 울고 있자 이를 발견한 일본군이 목을 내리쳐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집필자 : 김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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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강태성 부인 김씨」, 『3・1운동시 피살자 명부』, 1952(『일제강점기 피해자명부』, 국가기록원(http://theme.archives.go.kr/))
-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 제2권, 1971
- ・ 이지영, 「제암리 학살사건의 전개와 성격」, 충북대학교 교육대학원, 2008
출처
<독립운동가의 업적을 인명사전으로> 3.1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하여 그동안 축적된 연구기반 위에서 독립운동가의 업적을 사전적으로 종합, 정리하기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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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김씨 –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독립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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