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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05년, 함경북도 회령(會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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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미상 |
관련 사건 | 1921년 간도 총판부 사건 |
주요활동 | 1919년 간도에서 국민회를 조직,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명령에 따라 함북 독판부 설치 및 군자금 모집 ・ 일제기관 파괴 활동을 전개 |
포상훈격 |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
관련 인물/단체 | 간도대한국민회, 총판부 |
1905년 함경북도 회령(會寧)에서 태어났다. 다른 자료에는 생년이 1901년이라는 내용도 있다. 미상의 시기에 간도로 건너가 홍범도(洪範圖)의 휘하에서 활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1921년 당시 간도(間島) 허룽현(和龍縣) 사무사(四茂社) 송언동(松堰洞)에 거주하였다.
1919년 6월경 간도에서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동지들과 함께 국민회(國民會)를 조직하였다. 국민회는 국내 각지로 사람을 파견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는 한편 총기와 탄환 등을 국내로 반입하여 일제의 관청이나 은행, 친일파의 가옥 등을 파괴하는 활동을 전개한 단체이다. 이러한 방침에 따라 함북 경성(鏡城), 무산(茂山), 충청북도 제천(堤川) 등지에 군자금 모집반을 파견하였다.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연통제(聯通制)를 시행하자 국민회는 임시정부의 지방행정조직으로서 독판부(督辦府)의 역할을 대신하였다. 회령 지역에 함경북도 독판부를 설치하는 한편 관청 및 은행, 친일파 가택 등을 파괴할 목적으로 무기를 몰래 들여보내 과감한 투쟁을 전개하였다. 회령에서 공작활동을 하던 중 1921년 일제 경찰에게 조직이 발각되어 동지 14인과 함께 체포되었다.
1921년 9월 예심이 종결되자 정식 재판에 회부되어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징역 3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경성복심법원에 항소하였고, 1922년 2월 17일 사실심리 끝에 옥고를 겪었다.
석방된 후에는 조선일보 회령지국에서 기자로 근무하였다. 이후 다시 블라디보스토크(海蔘威, 해삼위)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계속하다가 행방불명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집필자 : 김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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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동아일보』 1921.11.18, 1922.2.18
- ・ 『매일신보』 1921.1.15, 9.25
- ・ 金正明 編, 『朝鮮獨立運動』 第2卷, 原書房, 1967
- ・ 金正明 編, 『朝鮮獨立運動』 第1卷 分冊, 原書房, 1967
- ・ 국회도서관, 『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 1975
-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자료집』 9권, 1984
- ・ 김승학 편, 『한국독립사』 하권, 독립문화사, 1970
-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 7권, 1976
출처
<독립운동가의 업적을 인명사전으로> 3.1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하여 그동안 축적된 연구기반 위에서 독립운동가의 업적을 사전적으로 종합, 정리하기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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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김새협 –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독립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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