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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기우리는 하루 중 상당한 시간을 수면으로 보낸다. 수면 시간은 개인마다, 그리고 나이에 따라 다르겠지만 만약 하루에 8시간을 잔다면 하루의 1/3, 60세까지 산다면 무려 20년이나 자면서 보내는 꼴이다. 평균 수명이 늘고 있으므로 만약 90세까지 산다면 30년이나 잠을 자는 셈이다. 잠 따위로 20, 30년을 보낸다니 시간이 아깝게 느껴지는가? 이런 생각은 수면에 대한 오해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수면의 이유와 목적
사람들은 보통 휴식을 위해서 잠을 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연구 결과 잠을 잘 때 몸과 뇌는 비교적 활발한 활동을 하는데 편안히 누워서 책을 볼 때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한다고 한다. 만약 휴식을 위해서 잠을 잔다면 잠은 그리 좋은 방식은 아닌 것이다.
또한 사람들은 운동을 많이 한 다음 날에는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경험에 근거해 지친 몸을 회복하는 것이 잠의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연구 결과 수면과 운동 사이의 관련성도 그리 밀접하지 않다고 한다. 한 연구에서는 신체 건강한 참가자들을 침대에서 쉬게 하며 6주를 관찰했지만 수면에 변화가 없었다. 만약 수면이 피로를 보상해주는 것이라면, 침대에서 쉬기만 한 참가자들은 평소보다 적게 자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운동은 수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일까? 수면 연구의 대가인 영국의 심리학자 호른(J. A. Horne)은 운동이 직접 수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운동을 해서 올라간 체온이 수면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해 다음과 같은 재미난 실험을 고안했다.
참가자 전원에게 러닝머신에서 달리기를 하게 했다. 이때 한 집단의 참가자들에게는 선풍기로 시원한 바람을 제공하고 피부에 물을 뿌려주면서 체온의 상승을 막았다. 다른 집단의 참가자들에게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아서 체온이 대략 섭씨 1도 상승했다.
만약 두 집단에서 수면의 변화가 동일하다면 운동이 수면에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고, 그렇지 않다면 수면을 체온과 연관시켜 볼 수 있을 것이다. 실험 결과는 전자가 아닌 후자였다. 체온이 올라가지 않은 집단은 수면의 변화가 없었으나 체온이 올라간 집단은 전체 수면 중에서 서파(slow-wave) 수면이 더 많아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서파 수면이란 느린 뇌파(brain waves)가 발생하는 수면으로 뇌의 대사율이 낮다고 해석할 수 있다.
호른은 이 실험의 결과에 대해 운동이 뇌의 온도를 올려서 대사율을 높이고, 이는 대사율을 낮추는 서파 수면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또 다른 실험에서는 헤어드라이어로 참가자의 머리와 얼굴을 따뜻하게 해 뇌의 온도를 대략 1도 정도 올리는 실험을 했는데, 그 결과 6명 중 4명의 서파 수면이 증가했다.
많은 학자들은 수면을 연구하기 위해 뇌파를 이용한다. 뇌전도(EEG ; electroencephalogram (뉴런 참조)라고도 하는 뇌파는 뇌 세포인 뉴런이 전기적 활동을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전자기파다. 뇌파는 주기에 따라서 베타(β, 14~30Hz), 알파(α, 9~13Hz), 세타(θ, 4~8Hz), 델타(δ, 1~3Hz)로 구분한다. 베타와 알파는 깨어 있을 때 나오는 뇌파로, 눈을 뜨고 있을 때는 베타파가 나오고, 눈을 감고 편안한 상태로 있으면 알파파가 나온다. 또한 수면 상태일 때는 느린 뇌파인 세타와 델타파가 나온다. 뇌파의 주기가 높은 것은 뇌가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고, 주기가 낮은 것은 뇌의 활동이 느려졌다는 것이다.
수면은 크게 서파 수면이라고 하는 non-REM 수면과 REM 수면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비율은 대략 80 대 20이다. REM은 빠른 안구 운동(Rapid Eye Movement)의 약어다. 실제로 잠을 자는 사람을 관찰해 보면 때때로 눈꺼풀 아래에서 빠르게 안구가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다. REM 수면은 수면 연구의 핵심 주제이기도 할 만큼 독특한 현상이다.
non-REM 수면일 때는 세타와 델타파가 나와서 뇌가 서서히 활동하지만 놀랍게도 REM 수면시에는 베타와 알파파가 나온다. 우리의 몸은 수면중이지만 우리의 뇌는 깨어 있다고 해서 REM 수면을 역설적 수면(paradoxical sleep)이라고도 한다. REM 수면을 통해 우리는 잠이 단지 활동의 반대인 휴식이 아니라 또 다른 활동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REM 수면
우리의 뇌는 REM 수면중에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REM 수면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많은 가설들이 있지만, 가장 유력한 가설은 REM 수면이 기억과 사고 과정을 돕는다는 것이다. 하루 동안에 뇌로 입력된 정보들을 정리해서 나중에 필요할 때 쉽게 찾을 수 있게 한다고 한다. 그 증거로 정신활동을 많이 하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이 많은 사람보다 REM 수면이 많다는 사실을 꼽을 수 있다.
또한 과학자들은 사람들이 REM 수면을 박탈당했을 때 기억력과 집중력이 떨어지는 등 우리의 정신 과정에 현격한 저하가 일어나고, 다음 날 REM 수면을 보충하려는 경향이 있음을 발견했다. REM 수면은 꼭 필요한 수면이다. 참고로 이런 경향은 non-REM 수면 박탈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학창시절 선생님에게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엉덩이로 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잠을 줄이면서 공부에 시간을 투자한다. 하지만 수면에 대한 여러 연구들은 하나같이 수면을 공부의 적(敵)이 아닌 편(便)이라고 말한다.
짧은 시기에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룩한 우리 국민들은 휴식을 악(惡)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휴가나 휴일을 반납하고 일하는 사람들이 진급도 빠르고 돈도 많이 벌었다. 좀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휴식 공포증을 가진 사람이 사회에서 인정받아 성공하는 분위기였다. 일은 필수이지만, 휴식은 선택이라는 논리에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휴식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휴식과 동급으로 취급받았던 수면이 일하기 싫어하는 게으른 사람들의 특징으로 치부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수면은 결코 휴식이 아닌 중요한 활동이며, 따라서 무조건 줄인다고 능사가 아니다.
수면은 매슬로가 설정한 욕구의 위계(추동 참조)에서 맨 아래인 생리적인 욕구에 해당한다. 이는 수면이 인간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일차적인 욕구라는 의미다. 물론 생리적 욕구에는 성(性)과 음식 섭취도 있지만, 수면의 중요성은 이에 비할 바가 아니다. 성과 섭식은 하루이틀 정도는 충분히 거를 수 있다. 해결하지 못한다고 당장 큰 문제가 오는 것은 아니다. 때에 따라 적절하게 조절할 수 있는 여지도 충분하다.
하지만 수면은 사정이 다르다. 단 하루만 걸러도 그 여파가 장난이 아니다.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기 위해 말 위에서 선잠을 잤다는 나폴레옹이나 하루에 4시간밖에 자지 않았다는 고(故)정주영 회장을 모델로 삼을 필요는 없다. 이보다 더 많은 사람들은 충분히 잠을 자면서도 성공하고 있으니 마음 편히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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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심리학에 대한 대중의 기대에 어느 정도 부응하면서도 가능한 학문으로서의 심리학의 입장을 많이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150개의 심리학 핵심개념어를 간결하면서도 통..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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