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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새 문화사전

까마귀가 있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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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가의 청소부

제사 끝난 들머리에 날은 저물어
祭罷原頭日已斜
지전 뒤적이는 곳에 갈까마귀 우짖네.
紙錢飜處有鳴鴉
사람들은 돌아가고 산길은 적막한데
山蹊寂寂人歸去
팥배나무 꽃잎을 빗방울이 때리누나.
雨打棠梨一樹花

권필의 「한식(寒食)」이란 작품이다. 한식 성묘 길의 소묘다. 아침 길을 나서 산소에 제 올리고 자리를 걷으니 어느새 해는 뉘엿해졌다. 지전(紙錢)을 뒤적거려 불씨를 재우자 하늘로 오르는 재를 보고 놀라 제사 음식을 기웃대던 갈까마귀가 까옥대며 날아오른다. 까마귀의 날갯짓을 따라 고개를 들어 휘 돌아보니 산길은 어느새 적막하다. 제사지내러 왔던 사람들도 다 돌아가고 나만 남았다. 적막한 풍경이다. 거기에 부슬부슬 비까지 내려 나무 가득 소담스레 피어난 팥배나무 꽃망울을 친다. 내 마음도 덩달아 부슬부슬 젖는다.

ⓒ 글항아리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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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오(烏)’는 몸통이 온통 검고 자라서는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먹인다. 그래서 ‘반포조(反哺鳥)’라고도 하고 ‘자오(慈烏)’라고도 부르는 효성스런 새다. 2구의 ‘아(鴉)’는 갈까마귀 또는 큰부리까마귀로 부른다. 덩치가 까마귀보다 조금 작고 배 아랫부분이 희다. 성질이 고약하여 제 어미를 먹일 줄 모른다.

제사를 마치고 자리를 정돈하는데 갈까마귀가 제사 음식을 탐해 뒤뚱뒤뚱 다가오다 제풀에 놀라 푸드득 달아난다. 사는 일이 참 덧없다. 사랑하던 어버이는 어느새 흙 속에 누워 계시고, 살아 올바로 봉양치 못했던 지난날이 회한이 되어 가슴을 친다. 우는 갈까마귀에게서 시인은 생전에 효도하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수욕정이풍불지(樹欲靜而風不止), 자욕양이친불대(子欲養而親不待)’라 했다.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잖고, 자식이 봉양코자 해도 어버이는 기다리지 않는다. 그때 진즉에 철이 들었더라면 오늘의 이 회한이 조금은 덜했을 것이 아닌가.

적막한 산중에 비까지 내려 가뜩이나 우중충하던 내 마음에도 비가 내린다. 활짝 피어난 팥배나무 꽃잎을 빗방울이 때리니 갓 핀 꽃잎은 또 속절없이 진창 위로 떨어지겠구나. 왔다가 가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겨우내 씨눈을 아껴 모진 추위를 견뎌 꽃 피운 그 보람이 몹시도 서운하다. 최기남(崔奇男, 1586~1668 이후)의 「한식(寒食)」 한 수를 더 읽어보자.

봄바람에 보슬비 긴 방죽을 지나가고
東風小雨過長堤
풀빛은 안개처럼 아스라해라.
草色如烟望欲迷
한식날 북망산 산 아랫길엔
寒食北邙山下路
들까마귀 날아올라 백양 숲서 우누나.
野烏飛上白楊啼

청명이나 한식 무렵엔 으레 봄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산소 가는 길에 봄바람이 연해 불고, 보슬비까지 내려 옷을 적셨다. 어느새 봄풀은 파릇파릇 돋아나 긴 방죽 길을 연둣빛으로 물들였다. 건너다 뵈는 앞길이 아슴아슴 아스라하다. 2구의 ‘미(迷)’는 사실은 가눌 길 없는 내 마음이다.

북망산은 본래 중국 낙양 북쪽에 있는 산 이름이다. 이곳에 공동묘지가 있어 귀인과 현인들이 모두 묻혔기에, “낙양성 십리허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 영웅호걸이 몇몇이냐”고 민요에서도 노래했다. 이제 와서 북망산은 그저 공동묘지의 범칭으로 일컬어진다.

한식날 여기저기서 제사를 지내고 사람들이 돌아가자 배고픈 들까마귀는 성묘객이 떠나기 무섭게 제사 음식을 탐해 달려든다. 그러다가 문득 사람을 보곤 놀라 훌쩍 날아 무덤가에 둘러선 백양나무 위로 올라가 까옥까옥 울어댄다. 정작 울고 싶은 것은 나인데 공연히 제가 울고 있다.

「고목한아도(古木寒鴉圖)」, 작가미상, 원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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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들판 저물녘의 적막함

갈까마귀는 까마귀보다 몸집이 작다. 부리도 다른 까마귀 종류에 비해 가늘고 짧다. 목 뒤와 배 가슴이 흰색을 띤다. 한자로는 한아(寒鴉)다. 하지만 옛 한시에 보이는 한아는 떼까마귀와 갈까마귀의 구분을 두지 않고 섞어 썼다. 갈까마귀는 무리지어 다니며 월동하는 겨울 철새다. 월동 중에는 농경지 근처에서 집단 서식해 농작물에 큰 피해를 입힌다.

단풍잎은 오강에 싸늘도 한데
楓葉冷吳江
우수수 반산엔 비가 내리네.
蕭蕭半山雨
갈까마귀 보금자리 정하지 못해
寒鴉栖不定
낮게 돌며 사당 언덕 서성거리네.
低回弄社塢
아스라이 먼지 구름 자욱한 성에
渺渺黃雲城
안타까이 붉은 잎 물들은 마을
依依紅葉村
먼 데 있는 그대가 그리웁구나
相思憶遠人
네 소리 듣자니 애가 녹는다.
聽爾添鎖魂

김시습의 「한아서부경(寒鴉栖復驚)」이다. 문집의 바로 앞에 실린 작품이 「낙엽취환산(落葉聚還散)」, 즉 낙엽이 바람에 몰려들었다가 다시 흩어지는 광경을 보고 계절의 변화에 놀라는 내용이어서, 여기에 다시 갈까마귀의 무리를 보고 ‘다시 놀란다(復驚)’고 했다. 가을이 왔다. 부쩍 높아진 하늘에 강가의 단풍잎은 공연히 오싹해서 몸을 사린다. 거기에 추적추적 비마저 내리니 이제 이 비 맞고 잎들은 낙엽이 되어 흙으로 돌아가겠구나. 낙목귀근(落木歸根)이랬다. 잎이 땅에 떨어져 다시 뿌리의 힘을 돋우는 물리의 순환이야 모를 바 아니지만 그래도 빈 하늘에 빈손을 올리고 선 나뭇가지들을 보면 왠지 사는 일이 허망하게만 여겨진다.

그래서였을까. 한아(寒鴉), 즉 갈까마귀도 보금자리를 정하지 못하고 사당이 있는 언덕배기에 모여 이리저리 배회하고 있다. 고개를 돌려보면 성에는 먼지 구름만 자옥하고 건너다보이는 마을은 붉게 물든 잎으로 불이 붙었다. 부슬부슬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린다. 갈까마귀 떼는 심란함을 견디지 못해 집 근처를 낮게 돌며 까왁까왁 까왁신다. 붉게 물든 단풍잎을 바라보다가 나는 문득 그대가 그립다. 까왁 까왁 까왁 비 맞고 짖어대는 네 울음소리에 내 애가 다 녹는다. 이 비 긋고 나면 시리도록 파아란 하늘이 열리겠지. 서러운 빛깔이 짙어가겠지. 나는 문득 그대가 그립다. 황량한 가을 벌판에서 까악까악 울어대는 갈까마귀 무리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자니, 기댈 곳 없는 타관 땅을 저렇듯 떠돌고 있을 그대 모습이 자꾸 떠올라 애가 다 녹을 것만 같다.

권헌의 「아(鴉)」를 한 수 더 보자.

쓸쓸히 먼 성벽서 울음 우노니
蕭蕭啼遠堞
어둑어둑 들 구름만 아득하여라.
慘慘野雲幽
줄 끊기매 가슴속 한 깊어만 가고
絃斷纔添恨
바람 높아 근심을 불러오누나.
風高却引愁
새끼를 기르느라 열심히 먹고
將雛勤自食
나무 가려 서둘러 먼저 깃드네.
擇樹急先投
맑은 새벽 붉은 해를 재촉하는데
淸曉催紅日
타향에서 저절로 허옇게 센 머리.
他鄕自白頭

아내가 먼저 세상을 뜬 뒤 그리움을 얹어 지은 시인 듯하다. 멀리 보이는 성가퀴에 갈까마귀가 쓸쓸히 앉아 있다. 아득한 들판 너머론 어두침침한 구름이 자옥하다. 돌아보면 그대는 간곳없고, 세월은 한스러움과 근심겨움만 남긴 채 또 저만치 떠나가버렸다. 자식 기르느라 보금자리 마련하느라 어두운 밤을 지새우고 이제 광명한 새벽을 맞을까 했더니 나는 홀로 타관 땅을 서성이는 흰머리의 나그네일 뿐이다. 저 집 없이 헤매는 갈까마귀나 흰머리로 타관을 전전해온 나나 다를 것이 하나 없다. 갈까마귀가 있는 풍경은 늘 이렇듯 쓸쓸하다.

「만아(晩鴉)」, 도치(陶治), 29.2×51.7cm, 명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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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도(鴉棲圖)」, 스단(石魯), 중국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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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그림 명나라 화가 도치(陶治, 1496~1576)의 「만아(晩鴉)」는 저물녘의 떼까마귀다. 낙목한천(落木寒天), 황량한 벌판 빈 가지 위로 떼까마귀가 나무 가득 날아들고 있다. 부옇게 흐린 시계(視界) 너머로 찬 겨울이 다가서는 느낌이다. 중국 현대 화가 스단(石魯, 1919~1982)이 그린 「아서도(鴉棲圖)」 역시 잎 다 진 빈 가지 위에 떼를 지어 앉아 있는 적막한 풍경을 그려놓았다.

시어머니 못됐다

예전 금언체 한시를 살펴보면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의 갈등을 노래한 작품이 적지 않다. 근세에 엮인 편자미상의 『동시총화』에는 『고부기담(姑婦奇譚)』의 한 대목을 인용했다. 『고부기담』은 구한말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주거니 받거니 하며 지은 연구시(聯句詩)로 인구에 널리 회자되었던 작품이다. 첫 두 구는 시어머니가 한 말이고 다음 두 구는 며느리의 화답이다.

시어머니 그 무엇이 그리 나빠서
姑有何惡
까마귀는 ‘고악 고악’ 울어대는고?
而烏嗔姑惡姑惡
며느리도 잘못한 거 하나 없는데
婦亦無曲
저 새는 ‘부곡 부곡’ 말을 하네요.
而禽言婦曲婦曲

고악 고악 울어대는 까마귀를 보고서 시어머니가 먼저 한마디를 했다. 시어머니가 나쁘다(姑惡)니, 그래 무엇이 나쁘다고 저렇게 ‘고악 고악’ 하고 울어댄단 말이냐? 그러자 며느리가 이렇게 답한다. “그러면 어머님! 며느리도 아무 잘못이 없는데 저 새는 왜 자꾸 며느리가 잘못했다(婦曲)며 ‘부곡 부곡’ 울어대는 건가요?” 결국은 주거니 받거니 한 셈이 되고 말았다.

이 시는 금언체 시가 지닌 희작적(戲作的) 성격을 잘 드러내면서 순간적인 상황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새로운 명명이 가능함을 잘 보여주는 예에 해당된다. 여기서 ‘부곡 부곡’ 우는 새는 원문에 “부곡은 새 우는 소리인데 두견이의 종류다”라고 한 것으로 보아 뻐꾸기다. 뻐꾸기는 앞서 보았듯이 포곡(布穀) · 법금(法禁) · 복국(復國) 등 여러 방법으로 음차되고 있지만 여기서는 부곡이라 했다.

시어머니가 못됐다고 고악(姑惡)이라 우는 새는 본래는 까마귀가 아니다. 송나라 소동파의 「오금언(五禽言)」에 이미 그 이름이 보인다. 원래 흰배뜸부기를 말한 것인데 시어머니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죽은 며느리의 넋이 화해서 된 새라고 했다. 중국 음으로는 ‘구어’쯤으로 들렸을 이 소리를 우리 음으로 ‘고악’으로 읽다보니 우리나라에서는 이 새가 까마귀로 둔갑되었다. 많은 시인이 「고악(姑惡)」이란 시를 남겼다.

게을러 바느질 않는다 시어머니 화내지 마오.
姑也休嗔慵不針
봄 근심에 꿈은 많아 비단이불 끼고 있죠.
春愁多夢擁羅衾
네가 능히 시어머니 나쁘다고 말해주니
爾能解說吾姑惡
깊은 규방 젊은 아낙의 마음을 아는도다.
正得深閨少婦心

홍석기(洪錫箕)는 재주가 뛰어나 아무리 험한 운자를 주어도 즉석에서 시를 짓곤 했다. 한번은 친구와 함께 길을 가다가 마침 소나무 위에서 까마귀 한 마리가 깍깍대는 것을 보았다. 친구가 갈까마귀를 제목으로 하고, ‘침(針)’ ‘금(衾)’ ‘심(心)’을 운자로 주어 골탕 먹이려 하자, 그가 즉석에서 지었다는 시다.

시어머니는 아침부터 몹시 화가 났다. 며느리라고 들어온 것이 봄날 해가 중천에 떴는데 일어날 생각도 않고 이부자리에 누워 있으니 화가 날 만도 하다. 그러자 며느리가 혼자 하는 말이다. “어머니! 저 게으르다고 나무라지 마세요. 게을러서 바느질하지 않는 게 아니구요, 봄날이 하도 노곤한 데다 이런저런 꿈도 많아 도무지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는걸요.” 그러고 나서 문밖에서 고악 고악 울어대는 까마귀를 보고, 네가 어떻게 우리 시어머니가 못된 것을 알아차리고 고악 고악 우느냐고, 어쩌면 그렇게 내 마음을 잘 아느냐고 속 시원해한 내용이다.

고악 고악!(시어머니 나쁘다)
姑惡姑惡
시누이 시샘 시동생 고자질 며느리 괴롭구나.
女妬兒愬婦恩薄
일생 동안 고생고생 가난한 집 며느리로
一生辛苦貧家婦
밤엔 삼을 길쌈하고 낮엔 술을 빚어 파네.
夜績絲麻晝酒酪
고악 고악 시어머니 정말 나쁘다
姑惡姑惡姑果惡
횃불 들고 그 누가 시어머니 부끄럽게 하려나.
束縕誰令姑發怍

김안로의 「고악(姑惡)」이다. 마지막 구는 『한서』 「괴통전(蒯通傳)」에 나오는 고사를 인용했다. 며느리가 밤중에 고깃덩어리를 잃었는데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도둑으로 몰아 내쫓았다. 며느리가 쫓겨나다가 평소 친하게 지내던 마을 아낙에게 들러 이 일을 이야기하며 인사하자 아낙이 솜방망이를 만들어 그 집에 가서 불씨를 청하면서 간밤에 개가 고기를 얻어서 서로 싸우며 물어뜯어 죽이니 횃불을 만들어 가서 싸움을 말리자고 하였다. 시어머니는 공연한 트집으로 며느리 쫓은 일이 소문날까봐 서둘러 가족을 보내 며느리를 불러오게 했다는 이야기다. ‘속온(束縕)’은 솜을 묶어 만든 횃불을 말한다.

시인은 이 고사를 바탕으로 시댁 식구들의 갖은 구박과 설움을 겪으면서 밤엔 길쌈하여 옷감 짜고 낮에는 술을 걸러 팔아 생계를 꾸려가는 가난한 집 며느리의 처지를 동정했다. 그러면서 이 못된 시어머니를 예전 마을 아낙이 그랬던 것처럼 부끄럽게 해줄 사람이 없겠느냐고 했다. 최영년도 「고악고악(姑惡姑惡)」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며느리 되면 온통 시어머니 나쁘다고 말하고
爲婦盡道姑性惡
시어미 되면 모두 며느리 못됐다고 말하지.
爲姑皆謂婦性惡
며느리야 며느리야! 삼가 시어머니 나쁘다 말을 말아라
婦兮婦兮愼莫謂姑性惡
며느리가 나쁘지 않으면 시어머니도 감히 못되게 못한단다.
婦不惡姑不敢惡

단순한 풍자를 넘어 교훈적인 어조를 담았다. 그런가 하면 산까마귀 울음소리를 음차하여 배고파 죽은 아이의 넋을 달래는 노래도 있다.

파병초!(할미는 떡을 굽고) 아이는 배고파 울고
婆餠焦兒啼飢
저문 날 늙은이 홀로 거친 밭을 가누나.
日斜翁獨耕荒陂
할미는 떡 준비해 늙은이 먹이려 기다리니
婆具餠餌待翁餉
한 조각 아이 몫으론 주린 배 어이 채우랴
一片兒分寧飽飢
옹알옹알 울며 떡 찾는 소리 그치지 않으니
吾伊啼索兒不歇
날아가는 봄 새 소리 더욱 구슬프고나.
飛作春禽聲更悲

김안로의 「파병초(婆餠焦)」란 작품이다. 파병초는 산까마귀의 울음소리를 음차한 것이다. 뜻으로 풀면 ‘할미가 떡을 굽네!’가 된다. 이 새에 얽힌 슬픈 전설이 있다. 아버지가 먼 데 나가서 돌아오지 않자 어머니는 산꼭대기까지 아버지 마중을 나갔다가 망부석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아이는 부모를 잃고 먹지도 않고 울다가 죽어 산까마귀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송나라 매성유(梅聖兪)의 「사금언(四禽言)」 가운데 「산오(山烏)」에 이 새 이야기가 나온다.

위 시는 이 전설을 각색해서 다른 이야기로 만들었다. 해 다 저문 녘에도 들일을 마치지 못한 할아버지는 저녁때가 되었는데도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손자는 배고파 떡 달라고 우는데 할머니는 하루 종일 들일에 지친 할아버지 드리려고 우는 손자에게 떡을 줄 수가 없다. 물론 상상 속에서 그려본 상황이다. 산까마귀가 옹알대는 어린아이 목소리로 “할머니 떡 구워요! 배고파요 떡 주세요” 하며 운다. 봄날 참혹한 보릿고개는 넘어가려면 한참이나 남았는데 사람이나 새나 허기진 배를 견딜 수가 없다.

극성스런 제주도의 까마귀 떼

언젠가 『제주일보』에 실린 사설을 보니 제주도에 까치들의 극성이 이만 저만이 아닌 모양이다. 단감 재배 농가에도 이루 말할 수 없는 피해를 안겨주고 텃새 철새는 물론 둥지에서 품고 있는 알마저도 까치의 포식 대상이 되어 생태계에 심각한 파괴력을 끼친다는 소식이다. 이 까치는 원래 제주도에 없던 것을 몇십 년 전 누군가가 길조라고 몇 마리 들여온 것이 번식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다는 소식이다. 이제 제주도에서는 사냥꾼을 동원해 이 해로운 새를 집단 사냥해 아예 씨를 말리기로 작정했다는 이야기도 함께 들려왔다.

한편 조선시대에는 까치 떼 대신 까마귀 떼가 난리였던 모양이다.

제주도의 까마귀, 제주도의 까마귀
耽羅烏耽羅烏
천하에 까마귀 다 있다 해도
天下有烏
제주도의 까마귀 같은 건 없네.
無如耽羅烏
네 무리 어찌 그리 많이도 울며 날고
爾群一何多飛鳴
어찌 그리 사람 집 근처까지 오느냐.
一何逼人廬
사람들 네 모습과 소리를 싫어하여
人皆憎爾形與聲
마당에 많던 돌 너 맞히느라 하나도 없네
庭中之石打爾無
까마귀가 울면 사람이 병들어 죽는다 하나
或言烏鳴人病死
사생은 하늘에 달린 것 까마귀가 어찌하랴만,
死生在天烏奈如
다만 능히 시끄럽게 어지럽혀서
秖能作鬧擾
또한 한 가지 근심 더하기에 충분쿠나.
亦足添一虞
대낮에도 사람 곁서 부뚜막을 엿보다가
白晝傍人窺廚竈
기물을 차 깨뜨리고 밥과 고기 훔쳐가네.
蹴破器物偸飱魚
닭이 알을 낳아도 병아리를 못 까니
有雞生卵不成雛
네가 모두 훔쳐 먹어 둥지엔 알이 없네.
被爾攫食巢無餘
집에서야 닭이 중하지 까마귀는 아끼잖아
人家惜雞不惜烏
감히 장차 병아리로 네 무리를 배불릴까?
肯將雞雛飽爾徒
활을 당겨 쏘아봐도 아무런 소용없고
彎竹注之能覺虛
날개 쳐서 쫓으려도 웅크려 가만있네.
拍翅欲去蹲仍居
나무 심은 본래 뜻은 좋은 새 오라 함인데
種樹本要來祥禽
좋은 새 오지 않음 네가 살기 때문이라.
祥禽不來爲爾棲
밤중엔 높은 나무 위에서 잠을 자고
夜宿高樹上
새벽엔 하마 벌써 서로를 불러댄다.
曉已鳴相呼
바람 불고 파도 쳐서 모두들 근심이라
風喧海吼共愁亂
내 외론 꿈 태백산 어귀도 이르지 못하누나.
使我孤夢不到太白山之隅
나무를 찍자니 나무가 아깝고
欲斫樹樹可愛
멀리로 내쫓자니 마땅한 방법 없네.
欲遠驅計亦疏
내 장차 옆집 사냥꾼에게 부탁하리
吾將往請東家之獵夫
사냥꾼의 탄환은 사슴 옆구리도 뚫으니
獵夫金丸穿鹿脇
널 쏘아 죽임도 잠깐 사이이리라.
射汝殺汝在須臾

김낙행(金樂行, 1708~1766)의 「탐라오(耽羅烏)」란 작품이다. 제주도의 무서운 까마귀 떼 이야기다. 제주도에 귀양가 있을 때 집 안은 물론 부뚜막까지 쳐들어와 그릇 뚜껑을 차서 깨뜨리며 밥이고 고기고 간에 사정없이 먹어치우던 까마귀 떼의 가증스런 행동에 지칠 대로 지쳐 원망과 저주를 퍼부은 것이다. 집에 닭이 알을 낳아도 다 먹어치워 병아리조차 부화할 수 없다. 참다못해 화살로 쏘아본들 워낙 무리가 많아 아무 소용이 없고, 작대기로 쳐도 가만 앉아 꿈쩍도 않고 맞는다는 것이다. 밤에는 나무 가득 새까맣게 올라 잠을 자다가 날이 밝기가 무섭게 까악까악대며 먹을 것을 찾아 집 근처로 몰려든다.

풍파가 심한 날은 안 그래도 심란한 마음에 멀리 태백산 아래 동해 바닷가 고향 집을 꿈에서나마 가볼까 싶어도 까마귀 떼의 우는 소리 때문에 잠들 수가 없다. 견디다 못해 그는 이웃집 사냥꾼을 청해다 사슴의 옆구리도 능히 뚫을 수 있는 총알로 모두 죽여버리고 말겠다고 했다.

지금은 어떤지 몰라도 몇십 년 전까지도 제주도의 까마귀 떼는 유명했던 모양이다. 「백치 아다다」의 작가 계용묵은 「탐라점철」이란 글에서 제주도의 까마귀를 이렇게 묘사했다.

물 맑고 산 아름다운 이 섬에 보기만 하여도 정 떨어지는 까마귀가, 듣기만 하여도 흉물스런 탁한 목소리로 까왁까왁 밤낮 난동을 친다. 물이 맑으면 노래 맑은 물새라도 살 법하고 산이 아름다우면 빛 고운 산새라도 살 법한데 이렇단 물새 이렇단 산새 한 마리 없이 이 어인 까마귀란 말인가. 빛이 까만 새가 하필 까마귀뿐이랴만 그래도 다들 발이나 주둥이가 색다른 빛을 지녔더라. 주둥이도 발도 왼통 새까맣게 몸을 더럽힐 법이야 어디 있는가. 제주에는 바람이 세다. 어쩌면 바다에 바람이라니 바람이 셈은 당연한 바람일 것이요, 바다엔 파도라니 파도가 셈은 바다의 운치를 돕는 것으로 오히려 상줄 바로되 이 바람이 파도 소리에 까마귀 소리가 어울려 제주의 해가 뜨고 해가 지고 한다는 것은 모름지기 제주의 욕이 아닐 수 없다. 어쩌다간 한두 마리도 아니요, 수천 수만으로 세일 수도 없는 떼 까마귀가 하늘을 뒤덮고 흉물스러운 소리를 지르며 떠돌다가는 행길이나 지붕이나 해안에까지도 격에 맞지 않게 새까맣게 나려와 깔려서는 어쩌자는 노릇인지 목춤을 추어가며 까왁신다. 아무리 까마귀 제 소리라고 해도 지붕 위에 따라 올라앉아서 방 안을 들여다보며 까왁심을 볼 때 기분이 좋을 사람은 없으리라.

당시만 해도 척박하기 그지없었을 제주도에서, 그의 눈에도 수천 수만의 무리로 하늘을 뒤덮고 길을 뒤덮으며 까왁시는 까마귀 떼가 몹시도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일제강점기까지만 해도 지붕 위고 어디고 할 것 없이 수천 수만 마리로 떼를 지어 횡행하던 까마귀들이 지금은 다 어디로 갔을까? 어쩌다 그 자리에 까치 떼가 들어와 사냥꾼을 동원할 생각까지 하게 만든 걸까? 애써 지은 감귤농사 다 망치고, 다른 새들 발도 못 붙이게 하는 고약한 행태 때문에 속이 부글부글 끓을 제주도민의 입장을 생각하면 딱하기도 하려니와 그 왕성한 번식력과 적응력으로 우리나라 전역에서 가장 흔한 새가 되어버린 까치의 입장도 난처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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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 집필자 소개

충북 영동 출생. 한양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모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동안 연암 박지원의 산문을 꼼꼼히 읽어 『비슷한 것은 가짜다』와 『고전 문장론과 연암 박지원』을 펴냈다. 아울러 한..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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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화사전
새 문화사전 | 저자정민 | cp명글항아리 도서 소개

옛사람들의 새에 대한 이해 방식은 지금과 사뭇 달랐다. 그들은 새에서 새를 보기보다는 인간을 보았다. 새들의 행동을 하나하나 관찰하면서 끊임없이 인간의 삶을 반추해보았..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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