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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에게서 읽는 오륜의 의미
류쿠이링의 그림은 제목을 「오륜도(五倫圖)」라 하고 학, 금계, 원앙, 공작, 제비 등 다섯 종류의 새를 그려놓았다. 어떻게 이 새들이 오륜을 상징하게 된 걸까? 오륜은 부자유친(父子有親), 군신유의(君臣有義), 부부유별(夫婦有別), 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의 다섯 가지 윤리다.
학은 『주역』 「중부괘(中孚卦)」에 “우는 학은 그늘에 있고 그 새끼가 화답한다(鶴鳴在陰, 其子和之)”고 했다. 어미 학이 산기슭에서 울면 새끼는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아도 화답해서 운다. 그래서 학은 부자유친의 상징이 된다.
금계(錦鷄)는 달리 준의(鵔鸃)라 한다. 준의의 ‘의(鸃)’에 ‘의(義)’자가 들어간대서 군신유의에 연결지었다. 또 금계는 흔히 봉황과 비슷하게 생겼다 하여 임금을 상징하기도 한다.
원앙은 금슬 좋은 부부를 상징하므로 부부유별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 공작이 문제인데, 이것은 좀 복잡하다. 송나라 휘종 황제의 공작새 그림 이야기와 관련이 있다. 공작은 높은 곳을 오를 적에 반드시 왼발을 먼저 든다. 공작은 발 하나를 드는 데도 차례(序)가 있으므로, 이에 장유유서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제비는 붕우유신이다. 주인이 아무리 가난해도 강남 갔던 제비는 용케 제 살던 옛 둥지를 잊지 않고 찾아온다. 이것이 바로 제비의 신의인 셈이다.
다섯 가지 덕을 갖춘 새
사소한 그림 하나하나에 특별한 의미를 담고자 한 옛사람들의 의식을 잘 읽을 수 있다. 이번에는 이 다섯 종류의 새 가운데 금계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자.
「부용금계도(芙蓉錦鷄圖)」는 송나라 휘종 황제인 조길(趙佶, 1082~1135)이 그린 것이다. 부용꽃 가지 위에 금계 한 마리가 올라앉아 나비 한 쌍을 바라본다. 그림 옆에는 그의 독특한 필치로 오언절구가 한 수 적혀 있다.
깊은 가을 매운 서리 막아 지키는
秋勁拒霜盛
우뚝한 관을 쓴 금계로구나.
峩冠錦羽鷄
오덕을 다 갖춘 줄 내 이미 아니
已知全五德
편안함 오리 갈매기보다 한결 낫도다.
安逸勝鳧鷖
아래쪽에는 들국화도 피어 있다. 오덕을 다 갖추었다 함은 깃털 속에 오방색을 두루 갖춘 것을 두고 한 말이다. 구한말 최영년(崔永年)은 금계의 울음소리를 ‘봉황불여아(鳳凰不如我)’로 옮겨놓았다. 봉황이 제아무리 아름답대도 나만은 못하다는 뜻이다.
금계는 준의 외에 별치(鷩雉)라고도 한다. 별치란 붉은 꿩이란 뜻이다. 당나라 안사고(顔師古)가 엮은 『한서주(漢書注)』에는 “금계는 산닭 비슷한데 벼슬이 작다. 등의 깃은 황색이고, 배는 적색이다. 목은 녹색이고, 꼬리는 홍적색이어서 광채가 선명하다”고 적혀 있다. 또 명나라 때 장자열(張自烈)은 『정자통(正字通)』이란 책에서 “봉황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광채가 있다. 신조(神鳥)니, 빛을 뿌리며 하늘을 난다”고 했다. 색채의 화려함이 눈길을 끈 것을 알 수 있다.
송나라 때 주보(朱輔)가 엮은 『계만총소(溪蠻叢笑)』에서는 “금계는 금항(金項)에 화배(火背), 반미(斑尾)와 양교(揚翹)를 지녔다. 뜻이 드높아 우리에 가두어도 길들일 수가 없다”고 했다. 목의 깃털은 금(金)의 덕을, 등은 화(火)의 덕을 지닌 데다 얼룩진 꼬리와 길게 치들린 긴 꼬리를 지녀 오덕(五德)을 갖춘 것을 드높인 것이다. 닭의 오덕이 머리에 벼슬이 있어 문(文)이 되고, 다리에 날카로운 며느리발톱이 있어 무(武)라 하며, 적과 잘 싸우고 물러서지 않는 용기가 있기에 용(勇), 먹을 것을 얻으면 서로 가르쳐주므로 인(仁), 새벽에 때를 알려주어 신(信)이라 한 것과는 달리 화려한 날개깃의 빛깔로 오덕을 말했다.
제 모습에 제가 취해
이시진의 『본초강목』에서는 “별(鷩)은 성질이 급하고 뻣뻣해서 이름 지은 것이고, 준의(鵔鸃)는 모습이 준수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주나라 때는 별면(鷩冕)이 있었고, 한나라 때는 준의관(鵔鸃冠)이 있었으니, 모두 그 아름답고 준수한 뜻을 취한 것이다”라고 했다. 고대로부터 조정에서 이 새의 깃털로 멋지게 장식한 모자를 즐겨 썼음을 알 수 있다.
금계는 자아도취의 경향도 다분히 있었던 모양이다. 송나라 때 유경숙(劉敬叔)의 『이원(異苑)』에는 “금계는 제 깃털을 아껴서 물에 모습이 비치면 곧장 춤을 추다가 눈이 어지러워 많이 죽는다. 거울을 비춰줘도 또한 그렇다. 꿩과 더불어 제 꼬리를 아끼다가 굶어 죽기도 한다. 모두 꾸밈으로 인해 제 몸을 망치는 것들이다”라고 했다. 물론 실제로 근거는 없는 말이다.
어쨌든 금계는 깃털이 워낙 아름다웠으므로 이를 잡아다가 봉황이라고 속여 파는 일도 심심찮게 있었다. 그래서 금계는 앞서 최영년의 말대로 스스로 봉황도 나만은 못해 하는 자아도취에 빠졌다고도 했고, 봉황도 아니면서 봉황인 체하는 ‘가짜’를 지칭하는 의미로도 많이 쓰였다. 금계는 그 화려한 깃털의 색채 때문에 역대 그림에 빈번히 등장한다.
우리 한시에서 금계를 직접 노래한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고경명(高敬命, 1533~1592)의 문집에는 「응제어병육십이영(應製御屛六十二詠)」이라 하여 무려 62수의 연작으로 임금이 사용하던 병풍에 그려진 화조도 62폭에 대해 노래한 작품이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새는 봉황, 공작, 청학, 백학, 가마우지, 보라매, 산진이, 노화송골, 옥송골, 백송골, 보라송골, 진나친, 보라라친, 박고지새, 당작(唐鵲), 앵무, 금치(錦雉), 백치(白雉), 오리, 물수리, 원앙, 산오리, 기러기, 거위, 흑오리, 흰오리, 청둥오리, 솔개, 사다새, 고니, 황새, 해오라기, 도요새, 흰독수리, 검독수리, 부엉이, 두견이, 흰까치, 까마귀, 올빼미 등 무려 수십 종에 이른다. 이 가운데 금치(錦雉), 즉 비단꿩이 금계를 노래한 것이다. 제목은 「암상당금치자웅월계화잡초(嵒上唐錦雉雌雄月季花雜草)」다.
금계가 짝을 지어 비단 날개 선명하게
兩兩華蟲錦翼鮮
이름난 꽃 벗을 삼아 푸른 바위 꼭대기에.
名花相伴翠巖巓
가벼운 바람 따스한 해 기심(機心)을 잊은 곳은
輕風暖日忘機處
좋구나 봄 동산 여린 풀잎 곁이로다.
好是春山嫩草邊
아마도 금계 한 쌍이 월계화 꽃밭 사이로 솟은 바위 위에 서 있고 둘레에 풀이 우거진 그런 그림이었던 듯하다. 위지가오(喩繼高)의 「옥란금계도(玉蘭錦鷄圖)」와 비슷한 구도의 그림이었던 모양이다.
서거정도 「금계(錦鷄)」란 작품을 한 수 남겼다.
봄이 온 연못엔 초록 물결 넘실대고
春入芳塘漾綠漪
수많은 금계는 갠 볕을 희롱한다.
錦鷄無數弄晴暉
물결 맑아 쌍쌍이 비춰보며 날아가선
波明兩兩飛相照
더운 모래 피하여서 물속에 잠겼구나.
沙暖雙雙水政依
향기로운 부리로 연꽃을 툭 치니
戲動小荷香玉觜
지는 꽃잎 불어와 꽃무늬 옷 시새우네.
吹來落蘂妬花衣
날개의 고운 무늬 남다름을 뽐내니
自多羽翼文章異
연못가 거위 오리 찾아볼 수 없구나.
鵝鴨池邊省見稀
초록 물결 넘실대는 봄날의 연못과 투명한 햇살, 그리고 연못 위에 갓 피어난 연꽃과 어우러진 금계의 화려한 깃털 및 아름다운 자태를 예찬한 작품이다. 이렇듯 금계는 상상 속의 새 봉황을 연상시키는 자태로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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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금계, 봉황도 나만은 못해 – 새 문화사전, 정민, 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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