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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고대 서양에서 로마는 그리스와 더불어 가장 융성한 나라였다. 기원전 4~6세기는 수많은 학자들을 배출한 고대 그리스의 황금기였으나, 기원전 146년 코린토스 전투에서 로마가 승리를 거두면서 로마가 유럽의 유일한 문명국가로 자리 잡게 되었다. 기원전 8세기경 이탈리아 중부에서 시작된 작은 마을각주1) 이 경쟁자인 그리스를 물리치고 유럽의 중심이 된 것이다.
기원전 8세기에 나라가 성립된 후 기원전 508년, 귀족과 평민 계급이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정 시대를 열었다. 기원전 272년경 로마는 오늘날 이탈리아 전역을 아우르는 동맹 체제를 이루었고, 기원전 146년에는 그리스 함락과 함께 한 세기 이상 지속된 세 차례의 포에니 전쟁을 승리로 마무리하면서 지중해를 중심으로 대제국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로마제국은 약 200년간 팍스 로마나라 불리며 지중해 주변 전역을 통치하는 전성기를 누렸다. 4세기에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고, 수도를 콘스탄티노플(오늘의 이스탄불)로 옮기면서 로마는 동로마와 서로마로 나뉘어졌다. 서로마는 마지막 황제인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Romulus Augustus)가 게르만족 대장 오도아케르(Odoacer)에 의해 강제로 퇴위당하면서 476년에 멸망한다. 이것이 세계사에서 고대가 끝나고 중세가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의학의 역사에서는 고대의 멸망이라는 역사적 대사건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기도 한다. 계속해서 영토를 넓혀가며 전성기를 구가하던 로마제국에 말라리아가 유행하면서 국력이 약해진 것이 결과적으로 제국을 멸망에 이르게 한 이유라는 것이다.
루키우스 베루스(Lucius Verus) 황제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황제가 함께 통치하던 165년, 시리아에 원정 중이던 로마군에 두창이 발생했다. 그런데 승리를 거둔 로마 군대가 해산하면서 고향으로 돌아간 군인들이 이 병을 퍼트리기 시작했다. 166년이 되자 로마 곳곳에서 환자들이 발생하기 시작했으며, 169년에 세상을 떠난 베루스는 물론 그의 사후 홀로 통치를 하다 180년에 세상을 떠난 아우렐리우스도 두창에 의해 세상을 떠난 것으로 추정된다. 아우렐리우스 통치기에 이미 공동 황제 역할을 하다 그의 뒤를 이어 황제에 오른 코모두스(Commodus)도 192년에 암살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한편에서는 두창에 의해 사망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당시 두창은 로마는 물론, 로마제국 바깥에 살고 있던 게르만족에게도 전파되었다. 두창이 맹위를 떨치던 166년, 갈레노스(Galenos, 129?~199?)는 고향인 소아시아로 가서 168년에 황제가 호출할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몇몇 역사가들은 이것을 갈레노스가 전염병을 피해 도망갔다가 유행이 끝난 후에 돌아온 것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갈레노스는 이 병에 대해 열, 설사, 인두의 염증을 기록으로 남겼는데, 이것만으로는 정확한 병명을 추적할 수 없다. 두창 이외에 홍역이라고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두창은 세 황제의 목숨을 앗아갔지만, 그보다 더 로마에 위협이 된 것은 말라리아였다. 말라리아는 주기적으로 열이 오르내리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모기가 전파하는 전염병이다. 로마의 영토가 넓어지면서 모기가 분포하는 지역도 넓어진 것이 말라리아가 수시로 창궐한 이유다.
말라리아는 본래 로마의 일부 지역에 국한된 풍토병이었으나 감염시 사망에 이르게 하는 열대열말라리아가 만연한 상태는 아니었다. 그러나 국토를 넓혀가면서 점령국에서 노예들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이들이 이탈리아 반도에 열대열말라리아를 전파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사망자를 양산하는 말라리아 대유행의 원인이 되었다. 말라리아는 모기의 증식만 막아도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다. 그런데 팍스 로마나 시대가 끝난 후 정치적인 혼란이 계속되면서 하천과 해안의 정비가 부실해졌고 늪지대가 증가한 것이 말라리아 대유행에 한몫을 했다.
말라리아가 창궐하여 사람들을 사지에 몰아넣을 때 감염된 사람들의 공통점은 늪지대를 방문했거나 가까운 곳에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탈리아어로 나쁜(mal) 공기(aria)를 의미하는 말라리아(malaria)는 늪지대의 나쁜 공기에 의해 전파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로마 역사가 마르쿠스 바로(Marcus Varro)는 “보이지 않지만 늪지대에 살고 있는 어떤 미세한 물질이 입과 코를 통해 인체에 들어오면 질병을 일으킨다.”며 집을 지을 때는 늪지대를 피해야 한다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열은 군인들의 사기를 떨어뜨림으로써 전투력을 현저히 약화시켰다. 농촌 지역에는 말라리아가 더 많이 유행했으므로 많은 농촌 인구가 도시로 유입되었다. 따라서 농업 생산성이 떨어졌으며,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발생한 도시화도 국력을 떨어뜨렸다. 이때 게르만족의 대이동이 일어났다. 태양이 빛나는 시실리 섬을 찾아온 서고트의 통치자 알라리크(Alaric)는 410년 로마를 점령했다. 그런데 그 역시 시실리 섬을 눈앞에 둔 코센차에서 말라리아에 감염되어 세상을 떠났다.각주2) 그로부터 66년이 지난 476년, 서로마제국은 게르만족의 침입에 의해 멸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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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으로 인해 인간의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짚어본다. 인문적 시각으로 바라본 전염병의 역사 속에는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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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고대 로마를 멸망시킨 두창과 말라리아 – 세상을 바꾼 전염병, 예병일,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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