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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 보장되고 언제 제한될까
모든 표현의 자유가 보호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스려지는 자와 다스리는 자의 동일성’이 요구되는 제도인 민주주의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스려지는 자, 즉 국민의 의사가 자유롭게 표현되고 통치자에게 전달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민주주의나 국민주권이라는 제도가 무의미해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많은 자유권 중 표현의 자유는 정치적 자유권으로 분류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 보장되고 어떤 경우에 제한되는 걸까요. 다음의 사건을 사례로 들어서 살펴보기로 하지요.
남성 A는 여성 B와 1년 정도 교제하다가 헤어졌다. 그 과정에서 B의 어머니 C는 A가 임신한 상태인 B를 학대하고 버리려 한다는 이유로 A의 뺨을 때리고 이 사실을 A의 회사와 대학에 알리겠다고 협박했다. 또 C가 폭행했다고 A가 신고하여 C가 경찰 조사를 받던 중 쓰러져 병원에서 치료를 받기도 했다. B는 A와 C, 그리고 A가 다니던 회사에 여러 통의 편지형식의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A는 B의 장례식장에서 C 등의 요구로 “다니는 학교와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취지의 각서를 작성했다.
C는 사망한 딸 B의 미니홈피에 ‘지난 1년간의 일들’이라는 제목으로 A와 B 사이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쓴 글을 올렸다. 또 A가 다니던 대학교 인터넷 게시판에 ‘B의 미니홈피를 방문해 줄 것’과 ‘B의 사연을 널리 퍼뜨려 줄 것’을 호소했다. 이후 일주일간 B의 미니홈피에 방문한 사람은 11만 명이 넘었고, 게시판에는 B의 명복을 빌고 A를 비방하는 글들이 폭발적으로 게시되었는데, 그중에는 A의 실명과 학교와 회사의 이름, 전화번호 등 신상정보를 밝힌 글들도 있었다. 네티즌들은 또 자신의 미니홈피에 해당 내용을 올리기도 했다.
네이버나 다음 등 포털사이트는 뉴스 서비스에 ‘현대판 베르테르, B양의 죽음에 슬퍼하는 네티즌’, ‘현대판 베르테르, B양 죽음과 네티즌 추모 열기’ 등으로 작성된 언론사의 기사들을 올렸고, 위 기사에는 A를 욕하는 수많은 댓글이 달렸다.
A는 네이버 뉴스서비스를 제공하는 엔에이치엔과 다음 뉴스서비스를 제공하는 다음커뮤니케이션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A의 명예를 훼손하는 기사들을 게재했고, 위 게시물들을 방치하거나, 검색서비스로 위 게시물을 쉽게 검색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게시자들의 명예훼손행위를 방조했다는 이유였습니다. 포털사이트 책임을 인정하는 것이 네티즌들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게 되는지가 문제의 핵심이었습니다.
대법원은 게시물의 불법성이 명백하고, 그 게시물이 게시된 사정을 구체적으로 인식하고 있었거나 게시물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었음이 명백하고, 또한 기술적·경제적으로 게시물에 대한 관리·통제가 가능한데도 게시물을 삭제하고 향후 같은 인터넷 게시 공간에 유사한 내용의 게시물이 게시되지 않도록 차단하지 않은 사업자는 부작위각주1) 에 의한 불법행위를 했다고 판단해서 포털사이트의 명예훼손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불법성이 명백한 표현은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보호될 수 없고, 이를 방치해 둔 포털사이트도 손해배상 책임을 진다는 것입니다.
공공의 이익과 관련한 표현의 자유는 넓게 보호된다
그러나 개인의 명예가 아닌 공공의 이익과 관련한 표현의 자유는 폭넓게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가장 유명한 것은 ‘명백, 현존하는 위험의 원칙’이라는 기준입니다. 미국에서 1919년 나온 솅크(Schenck) 판결에서 올리버 웬델 홈즈 대법관이 처음으로 내세운 원칙이지요.
솅크는 1차 세계대전 중이던 당시에 미국 사회당의 간부였는데요, 평소 1차 세계대전이 독점자본주의 국가들 간의 싸움이므로 참전을 거부해야 한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미국이 유럽에 군대를 파견하기 위해 징병법을 제정하자 그는 우편으로 징집 대상자 2명에게 징병법이 위헌이라는 전단을 보냈고, 이에 따라 방첩법 위반으로 기소되었습니다. 당시 미국의 방첩법은 고의로 미 육해군에서 불복종, 불충성, 의무 이행 거부를 선동하거나 선동하려 하는 행위와 고의로 징병을 방해하는 행위를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홈즈 대법관은 실질적 해악을 초래할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을 발생시키는 표현에 대해서만 연방 의회가 방지할 권한을 가진다는 원칙을 제시하였습니다. 즉 실질적 해악을 초래할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을 발생시키는 표현은 법률에 따라 규제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지요.
“자유로운 의사 표현의 가장 엄중한 보호막은 극장에서 거짓으로 ‘불이야’라고 소리쳐 공황 상태를 야기하는 사람을 보호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유명한 사례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솅크가 보낸 전단지는 평화 시에는 별문제가 없을지 모르나 전시에는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을 발생시키는 표현 행위라고 보아서 유죄로 판단하였지요.각주2)
즉 전쟁 등 위기 상황에서는 사회 전체 토론에 의한 비판 과정을 거칠 시간이 없고, 위험한 표현이 즉각적인 사회적 해악을 가져올 수 있으므로 예외적으로 표현을 규제할 수 있다고 했던 것입니다.각주3)
이 원칙은 출발 당시와는 달리 현재는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률이 헌법에 합치되는가를 심사하는 기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즉각적인 사회적 해악을 가져오지 않는 표현에 대해서는 규제를 해서는 안 된다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기준으로 이해되고 있는 것이지요. 즉,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률은 ‘실질적 해악을 초래할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있는 표현을 규제하는 데서 그쳐야 하고 그 이상의 규제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공적인 인물에 대한 표현은 더 넓게 보호된다
또 다른 기준으로 들 수 있는 것은 표현으로 인한 피해자가 공적인 존재인지 사적인 존재인지, 그 표현이 공적인 관심 사안에 관한 것인지 순수한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사안에 관한 것인지, 그 표현이 객관적으로 국민이 알아야 할 공공성, 사회성을 갖춘 사안에 관한 것으로 여론 형성이나 공개 토론에 기여하는 것인지 아닌지 등을 따져 보아 공적 존재에 대한 공적 관심 사안과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사안 간에는 심사기준에 차이를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표현이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사안에 관한 경우에는 언론의 자유보다 명예의 보호라는 인격권이 우선할 수 있으나, 공공적·사회적인 의미를 가진 사안에 관한 것인 경우에는 그 평가를 달리해야 하고 언론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완화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앞서 본 사건에서 남성 A는 전혀 공적인 인물이 아니었고 문제 된 내용도 사적인 것이었으므로 그의 명예를 훼손한 글들은 표현의 자유에 따라 보호되지 못했지만, 혹시 그가 공적인 인물로서 사실관계가 진실한 것이거나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면 결론은 달라졌겠지요?
사상의 자유 시장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최선
이처럼 표현의 자유가 중요한 이유는,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이 사상의 자유 시장을 보호하여 민주주의를 유지시키기 때문입니다. J. S. 밀은 《자유론》에서 ‘억압된 의견 안에 사회가 필요로 하는 모든, 또는 부분적인 진실이 담겨 있을 수 있다’, ‘거짓된 신념조차 값지다. 이는 그에 관한 토론 과정에서 반대 관점이 과연 진실한 것인지 시험하고 확인해 주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각주4)
여기서 ‘악마의 변호사’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악마의 변호사란 악마를 변호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말이 아닙니다. 어떤 주장이 맞는지를 시험하기 위해서 그와 반대되는 주장을 세운 다음 그 입장에서 시험대상이 되는 주장을 꼬치꼬치 따져 보는 방식을 말합니다. 로마 가톨릭에서 성인을 선포할 때 그 성인이 행했다는 기적이 사기가 아닌지 의심하고 조사하는 역할을 했던 사람을 부르던 말이었지요. 악마의 변호사가 하는 시험을 통과한 사상은 진실한 사상으로 인정될 수 있겠지요.
그러므로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하여 반대의견도 제시되도록 하는 것이 문제 된 관점의 진실을 밝혀 주므로 궁극적으로는 민주주의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지요. 명백, 현존하는 위험의 원칙을 처음으로 주장한 홈즈 대법관도 ‘사상의 자유로운 거래야말로 궁극의 선(善)이라는 염원에 보다 잘 도달할 수 있는 길’이며, ‘진실을 시험하는 최선의 기준은 시장 경쟁 속에서 스스로를 수용시키는 생각의 힘’이라고 하였지요.각주5)
각자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드러내도록 하여 자유로운 경쟁 속에서 토론하여 반대편을 설득할 수 있다면 그 생각은 진실한 생각으로 볼 수 있다는 취지이지요. 결국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게 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러자면 표현의 자유에 대한 규제는 되도록 최소한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지향해 나가는 것이 우리 헌법정신에 조금 더 다가가는 방법이고, 사상의 자유 시장을 지키는 것이 그중 가장 중요한 방법입니다. 그러자면 표현의 자유는 좀 더 넓게 인정되어야 합니다. 다만 공적 인물이 아닌 개인의 사생활이나 명예는 더 강력하게 보호해야 할 것입니다.
무심코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고 다른 사람들의 글에 댓글을 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와 그 한계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없을 경우 자칫하면 명예훼손이나 모욕의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사생활 침해의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헌법 문제는 늘 우리 일상 가까이에 있습니다.
소수자 집단의 목소리를 보호하기
다수결의 원리로 작동하는 민주주의에서 소수자 집단의 목소리를 굳이 보호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질문을 평소에 많이 받습니다. 카스 R. 선스타인 교수는 이 점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낮은 계층의 집단에 속한 사람들은 다양한 생각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로 이루어진 좀 더 큰 집단에서는 침묵을 지킨 경우가 많으며, 이와 같은 집단 내에서의 논의는 높은 계층에 속한 사람들에 의해 지배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소수자 집단의 일원이나 정치적 약자에 해당하는 집단의 구성원들은 특정 사안에 대해 자기들끼리 논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런 소수자 집단이 침묵을 지키게 되면 결과적으로 “사회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사회로부터 빼앗는 것”이라고 합니다.
다수자 집단이 미처 깨닫지 못해서 사회에 존재하거나 다가올 문제들을 방치해 버린다면 그것은 결국 사회 전체 손실이 될 수도 있습니다. 소수자 집단 내부에서의 논의는 “일반적인 논의에서는 드러나지 않거나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견해를 발전시킬 수 있게” 합니다.
민권운동, 환경보호운동, 장애인권익운동 등 많은 사회운동들이 모두 소수자 집단의 논의를 통해 힘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다양한 사실과 논점이 드러날 수 있도록 하여 사회는 이전에 알던 것보다 훨씬 많은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는 거지요.각주6)
다만 소수자 집단의 극단주의와 편향성을 피하려면 그 내부 논의를 다른 집단들과 나눌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데요, 다양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참여하는 논의에 그 집단의 대표가 함께 참여하도록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먼저 소수자 집단이 자기들끼리 논의할 수 있도록 해 주고, 다음으로 그들의 대표가 다른 집단들의 논의에 함께 참여하도록 보장하는 것이지요.
‘다양한 집단들을 그들이 찬성하지 않는 논점에 노출’시키기 위한 제도가 필요하며 단순한 다수결로 이루어지는 참여민주주의가 아닌, 심의민주주의가 타당하다는 것입니다 심의민주주의란 단순하게 찬성, 반대만을 묻는 것이 아니라,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입장에 대한 충분한 학습과 토론을 거쳐서 결정을 하게 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결국 소수자 집단의 목소리를 보호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발전은 사람들이 자유로이 자신의 의견을 펼쳐 나가는 데서 이루어진다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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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기원부터 변화의 과정, 현재 제기되는 법에 관한 다양한 해석 및 논쟁은 물론이거니와 법의 필요성 및 법이 유지되는 기틀인 정의라는 관념, 법치주의의 구체적 실현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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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표현의 자유 – 김영란의 열린 법 이야기, 김영란, 풀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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