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처 연합연감

경주 사천왕사지ㆍ분황사지ㆍ왕경유적 발굴

2008년 연감 보러가기 / 문화 / 문화재 / 발굴 및 발견
툴바 메뉴

신라시대 문무왕 19년(679)에 완공한 경주 사천왕사(四天王寺)의 정방형 쌍탑(雙塔)은 모두 기단부 네 면에 사천왕(四天王)이 악귀를 제압하는 모습을 새긴 녹유전(綠釉塼.녹색 유약을 바른 벽돌)을 배치한 것으로 드러났다. 유적 정비 차원에서 이곳에 대한 연차 발굴을 벌인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동탑터를 발굴조사한 결과 서탑과 마찬가지로 같은 방식으로 녹유사천왕상전(祿釉四天王像塼)을 배치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 결과 동탑터에서 녹유전은 목탑 기단부를 장식하던 면석(面石)으로 사용했으며, 아울러 그것들을 기단 계단을 중심으로 각 면에 6개씩(3쌍×2조), 모두 24개(4면×6개)를 배치함으로써 사천왕이 목탑 사방을 경계하는 모습을 연출하고자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나아가 사천왕사는 남회랑(南廻廊ㆍ22칸) 중앙에 전체 사찰 대문인 중문(中門.3칸×2칸)을 배치하고, 이 중문을 출발해 남북 일직선상에 금당(金堂ㆍ5칸×3칸)과 강당(講堂ㆍ미발굴)을 세웠으며, 금당 남쪽 동서 양측에다가 목탑(木塔)을 만들었음이 밝혀졌다. 금당과 그 양쪽 동서회랑(東西廻廊ㆍ31칸)은 익랑(翼廊ㆍ9칸)이라는 시설로 연결했다.

신라 선덕여왕 3년(634년)에 창건한 분황사에 대한 경주문화재연구소 조사에서는 사찰로 들어가는 남쪽 정문이자 대문인 중문(中門) 자리와 규모가 확인된 것은 물론, 그 남쪽 담장 너비(길이)가 신라 최대 사찰 황룡사의 그것에 버금가는 것으로 밝혀졌다. 중문은 분황사 석탑에서 남쪽으로 30.65m 떨어진 지점에서 발견됐다. 규모는 전체 길이 12.63m에 도리칸(정면) 3칸, 보칸(측면) 2칸이었다. 이로써 분황사는 석탑과 금당, 그리고 중문이 모두 남북 일직선에 위치하는 전형적인 평지 가람 형식을 취했음을 알 수 있었다. 남회랑은 보칸 2칸으로 2중 회랑을 갖춘 소위 복랑(複廊) 구조라는 사실도 아울러 밝혀졌다. 같은 경주문화재연구소의 경주 임해전터 인근 신라왕경 유적에 대한 발굴에서는 무수한 통일신라시대 유적과 유물이 확인됐다. 잘 다듬은 장대석으로 기단을 갖춘 통일신라시대 대형 건물지를 비롯한 왕궁 관련 유적 8동과 대형 담장터, 그리고 깊이가 무려 7.3m에 이르는 석축 우물 등이 드러난 것이다. 이 중 우물에서는 각종 명문(銘文) 기와와 토기, 그리고 아가리가 넓고 목이 긴 병(甁)과 말, 돼지 등의 동물 뼈가 다량 출토됐다. 너비 0.7cm 가량 되는 정육면체에 원형인 점을 새겨 숫자를 나타낸 상아로 만든 주사위 1점도 수습됐다.

본 콘텐츠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위 내용에 대한 저작권 및 법적 책임은 자료제공처 또는 저자에게 있으며, Kakao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TOP으로 이동

관련연감

발굴 및 발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