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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지철 車智澈
    제6대 국회의원 선거 때 민주공화당 전국구의원으로 국회에 진출한 이래 1978년까지 4선의원을 지냈다. 박정희 대통령 경호실장에 임명된 후 월권행위로 대통령 비서실과 중앙정보부와의 마찰이 잦았다. 공수부대의 대위였던 그는 5·16군사정변 당시 박정희 장군의 경호장교로 활동한 것이 계기가 되어 정치에 입문했다...
    출생 :
    1934, 서울
    사망 :
    1979. 10. 26, 서울
    국적 :
    한국
    도서 다음백과 | 태그 정치가
  • 차지철 車智澈
    해방 이후 공수여단 대위, 경호장교, 육군중령 등을 역임한 군인. 정치인.|개설 본관은 연안(延安). 경기도 이천 출생. 아버지 차윤염, 어머니는 김대안이며 송희성ㆍ윤보영과 결혼해 세 딸을 두었다. 1953년 사병으로 입대한 후 장교로 승진하여 1961년 공수여단 대위로 5·16군사쿠데타에 가담하였다. 이후 국회의원...
    시대 :
    현대
    출생 :
    1934년
    사망 :
    1979년
    경력 :
    국회의원, 대통령 경호실장
    유형 :
    인물
    관련 사건 :
    5·16 군사쿠데타, 10·26사건
    직업 :
    군인, 정치인
    대표작 :
    우리가 세워야 할 좌표
    성별 :
    분야 :
    정치·법제/정치
    본관 :
    연안
  • 차지철 車智澈, 車智澈
    공직자 정보 차지철(車智澈, 1934년 11월 6일~1979년 10월 26일)은 대한민국의 군인이자 정치인이며 정무직공무원이다. 차지철은 1934년 11월 6일, 경기도 이천에서 아버지 차수찬의 3남 3녀 중 차남으로 출생하였고 한때 경기도 파주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냈고, 이후 서울로 이사하여 서울에서 성장하였고 1953년에 용...
    도서 위키백과
  • 10·26사태 박정희 암살 사건, 十二六事態
    국내외적 상황은 유신체제가 더이상 지속되기 어려운 한계상황이었다. 더욱이 집권층 내부의 갈등은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재규와 대통령 경호실장이었던 차지철(車智澈)의 대립구도로 표면화되었다. 이들의 대립을 결정적으로 증폭시킨 것은 유신체제에 대한 국민의 저항, 특히 부마사태의 처리 문제였다. 여기...
  • 10·26사태 십이륙사태, 十二六事態
    부마항쟁은 강경진압에 의해 일단 해결되었으나 그 대응 방식을 둘러싼 집권층 내부의 갈등을 야기시켜 10·26사태를 발생시켰다. 대통령 경호실장 차지철(車智澈)은 부마항쟁에 관한 강경진압을 주장하였으며,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는 상대적으로 온건한 입장이었고 양인은 서로 경쟁적인 입장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시대 :
    현대
    발생 :
    1979년 10월 26일 밤 7시 40분 경
    성격 :
    암살사건
    유형 :
    사건
    분야 :
    정치·법제/정치
    관련 인물/단체 :
    김재규, 박정희
  • 10 ・ 26사건 발생
    박정희 대통령이 중앙정보부 안가에서 술자리를 하다가 심복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그 자리에 있던 차지철 경호실장도 김재규의 총을 맞고 사망했다. 1979년 들어 박정희 정권은 위기에 몰려 있었다. 박정희 정권은 YH무역의 여성 노동자들을 강제 진압한 데 이어 김영삼 신민당 총재의...
    시대 :
    1979년 10월 26일
    국가/대륙 :
    한국
  • 박정희 대한민국 제5·6·7·8·9대 대통령, 朴正熙
    투입하여 1,058명을 연행하고 66명을 군사재판에 회부했다. 이를 ‘부마항쟁’이라고 한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는 중앙정보부장 김재규, 경호실장 차지철 등과 함께 부마 사태의 수습책을 논의하기 위해 궁정동에 모였다. 이곳에서 박정희는 차지철과 함께 김재규에게 피격당하고 말았다. 그는 곧 수도육군병원...
    출생 :
    1917년
    사망 :
    1979년
  • 김재규 金載圭
    되었을 때는 시민들의 항쟁이 가속화될 것으로 입장을 개진하기도 했다. 중앙정보부장 재직 말기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신뢰를 점차 잃었으며 경호실장 차지철과도 심각한 마찰을 야기했다.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의 안가(安家)에서 김재규는 박정희 대통령과, 실질적인 제2인자로 권력을 행사해온 차지철을 살해...
    출생 :
    경북 선산, 1926. 3. 6
    사망 :
    1980. 5. 24, 서울
    국적 :
    한국
  • 서울의봄
    투입해 수많은 희생자를 남긴 채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종결되었다. 내용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 부장 김재규가 박선호, 박흥주 등과 함께 박정희 대통령과 차지철 경호실장을 살해하면서 10 · 26사건이 발생했다. 이날 박정희는 KBS 당진 송신소 개소식과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에 참석한 후 궁정동 안가에서...
    시대 :
    현대
    유형 :
    개념
    분야 :
    역사/현대사
  • 신재순
    심수봉이 합류하며 다 함께 만찬장소로 향한다. 차가 출발한지 5분만인 오후 6시 40분쯤 궁정동에 도착, 소파가 많은 대기실로 안내되어 각서를 쓰고 차지철 경호실장이 나와 안내를 한다. 대기실에서 면접을 볼 때 술을 못 마신다고 했더니 차지철이 '옆에 깡통을 갖다 놓을터이니 거기에 부어버려라'고 말해주어...
    도서 위키백과
  • 김재규 金載圭
    와이에이치(YH)무역 여공농성사건, 신민당 총재 김영삼의 의원직 박탈사건, 부산·마산 항쟁 등의 정국 불안사건 등을 접하면서, 박정희 대통령 경호실장 차지철과의 갈등, 그리고 정권의 정당성에 대한 회의를 갖게 되었고, 1979년 중앙정보부 직속부하인 박선호·박흥주 등과 모의하여 이른바 ‘10·26사태’인 대통령...
    시대 :
    현대
    출생 :
    1926년 3월 6일
    사망 :
    1980년 5월 24일
    경력 :
    국회의원, 건설부장관, 중앙정보부장
    유형 :
    인물
    관련 사건 :
    10·26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직업 :
    군인, 정치인
    성별 :
    분야 :
    정치·법제/정치
    본관 :
    김녕
  • 정동성 여암(驪巖), 鄭東星
    청년분과 부위원장을 맡았으며, 1972년 10월 유신을 지지하는 ‘4·19세대’ 45인에 포함되기도 했다. 1975년 공화당 청년분과위원장이 되었고, 1976년 5월 차지철의 후임으로 공화당 성남·여주·광주·이천지구당 위원장이 되었다. 1979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 공화당 후보로 출마해 성남·여주·광주·이천 선거구...
    시대 :
    현대
    출생 :
    1939년 7월 8일
    사망 :
    1999년 8월 5일
    경력 :
    체육부 장관, 국회의원
    유형 :
    인물
    직업 :
    정치인
    성별 :
    분야 :
    정치·법제/법제·행정
    본관 :
    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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