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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그레이트 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왕국, 英國영국 해협과 북해를 사이에 두고 유럽 대륙과 떨어져 있다. 인접국가로 남쪽의 프랑스와 동쪽의 네덜란드·덴마크가 있다. 영국을 이루는 섬 중 가장 큰 그레이트브리튼은 섬의 거의 2/3를 차지하는 남쪽의 잉글랜드(13만 440㎢)와 섬의 1/3에 해당하는 북쪽의 스코틀랜드(7만 8,770㎢), 그리고 서쪽의 웨일스(2만 760㎢...
- 인구 :
- 67,961,439명 (2024년 추계)
- 수도 :
- 런던
- 면적 :
- 243,610㎢ 세계면적순위
- 공식명칭 :
-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 기후 :
- 서안해양성기후
- 민족 구성 :
- 켈트족, 앵글로색슨족
- 언어 :
- 영어
- 정부/의회형태 :
- 입헌군주제 / 양원제
- 국가원수/정부수반 :
- 국왕 / 총리
- 종교 :
- 성공회(43%), 로마가톨릭(9%), 개신교(8%), 기타 기독교 종파(20%), 이슬람(2%), 비종교(13%)
- 화폐 :
- 파운드 (£) 환율계산기
- 국화 :
- 장미
- 대륙 :
- 유럽
- 국가번호 :
- 44
- GDP :
- USD 2,936,286,000,000
- 인구밀도 :
- 279명/km²
- 전압 :
- 240V / 50Hz
- 도메인 :
- .g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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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만 시대의 브리튼주트족의 침입과 정착 300년 이상 지배자로 군림했던 로마인이 브리튼을 떠난 뒤에 일어났던 영국의 역사는, 6세기 중엽 와이즈 섬 수도원의 길다스(St. Gildas) 수도사가 썼던 《브리튼의 멸망과 정복(De excidio et conquestu Britanniae)》에서 엿볼 수 있다. 길다스의 작품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로마의 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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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튼의 유일한 정복자, 노르망디 공 윌리엄8세기부터 바이킹의 끊임없는 침략을 받아왔던 프랑스 서쪽 해안은 거의 무법천지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리고 800년 크리스마스 이브, 샤를마뉴 대제의 서로마 황제 등극으로 절정에 오른 카롤링거 왕조는 그의 죽음과 함께 동(東)·중(中)·서(西) 프랑크로 분열했으며(843), 이후 줄곧 통합과 분열을 거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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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류를 거부한 음악의 자유주의자, 벤저민 브리튼 Edward Benjamin B..벤저민 브리튼은 1913년 영국 로우스토프트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피아노, 비올라, 화성학, 음악이론을 배우며 음악의 기초를 닦았고, 16살 때인 1929년에는 런던 왕립 음악원에 장학생으로 입학해 작곡과 피아노를 전공했다. 학창 시절 모차르트, 슈베르트, 말러, 쇤베르크, 베르크와 같은 오스트리아 작곡가들의 작품...
- 출생 :
- 1913년 11월 22일
- 사망 :
- 1976년 12월 04일
- 국적 :
- 영국
- 대표작 :
- 관현악곡 〈단순 교향곡〉, 〈청소년을 위한 관현악 입문〉, 오페라 〈베니스에서의 죽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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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트 브리튼 Tate Britain영국 미술의 집합소이자, 영국의 자랑인 윌리엄 터너(JMW Turner)의 콜렉션을 볼 수 있는 테이트 브리튼. 1897년 헨리 테이트 경이 자신이 소장하던 작품들을 국가에 기증하면서 내셔널 갤러리 소속의 국립 영국 미술관으로 시작해 1955년 영국과 근대 유럽 회화 미술관인 테이트 갤러리로 독립했다. 이후, 2000...
- 소재지 :
- 5 Atterbury Street, Westminster, London, SW1P 4
- 요금 :
- 무료(특별 전시는 유료)
- 휴관일 :
- 12월 24~26일
- 가는 법 :
- 지하철: Victoria 라인 피림코(Pimlico) 역에서 도보 5분
- 사이트 :
- www.tate.org.uk
- 이용 시간 :
- 매일 09:45~18:00(17:15까지 입장 가능) / 매달 첫번째 금요일 22:00까지 연장 오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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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의 첫 번째 브리튼 원정그의 정치·군사적 위치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결과가 되었다. 특히 전쟁이 오랫동안 계속되면서 그를 따르는 병사들의 불만은 심상치 않았다. 카이사르가 브리튼 원정을 심각하게 고려한 배경에는 바로 이런 병사들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한 조처가 있었던 것이다. 55년, 카이사르는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로 "저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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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우스 황제와 브리튼 정복제대로 내세우기 힘든 기존의 로마 관료들 대신에 해방노예 출신의 새로운 인재들을 자신의 관료로 임명하는 제도였다. 침략의 명분 그런 궁정관료 중에는 브리튼계의 망명자 베리쿠스(Bericus)가 있었다. 그는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한 한 가지 계책을 생각해냈는데, 그것이 바로 브리튼 정복이었다. 그는 기회가 닿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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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의 두 번째 브리튼 원정갈리아로 돌아온 카이사르는 이듬해인 54년, 해마다 관례로 행하던 원로원 출석을 위해 로마로 떠났다. 그는 로마로 떠나기 전에 부장들을 불러, "브리튼 2차 원정에 대비하여 겨울 동안 가능한 한 많은 배를 건조하고 낡은 배들은 수리해 놓으라."고 명령했다. 특히 그동안의 원정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배의 높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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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기독교의 브리튼 전래브리튼에 기독교가 들어온 것은 언제쯤이었을까? 대체로 2세기쯤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 그러나 음지에서 조용히 신도를 늘려간 기독교는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공인 이후, 점차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314년이 되자 프랑스 남부 아를레 종교회의에는 세 명의 브리튼 주교와 한 명의 부제(deacon)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