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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작홍사용문학관
    일제 강점기에 단 한 줄의 친일 집필활동도 거부한 근대 낭만주의 문학과 신극운동을 이끈 노작 홍사용 선생의 문학사적 업적을 두루 발굴하고 계승하기 위해 건립된 노작홍사용문학관은 시민 모두가 쉽게 찾을 수 있는 쉼터이자 문화충전소로 자리매김해 왔다. 노작홍사용문학관은 두 개의 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1층에...
    위치 :
    경기도 화성시 노작로 206 (석우동)
  • 홍사용 노작(露雀), 洪思容
    그는 이러한 비애의식을 민족적 차원으로 끌어올린 시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유해는 유년시절을 보낸 경기도 화성시 노작로(구 동탄면 석우리) 노작홍사용문학관노작공원에 안장되어 있다. 생존시에는 작품집이 나오지 않았고 1976년 유족들이 시와 산문을 모아 『나는 왕(王)이로소이다』를 간행하였다. 참고문헌
    시대 :
    근대
    유형 :
    인물/근현대 인물
    분야 :
    문학/현대문학
  • 홍사용 洪思容
    잠시 한방의학을 공부했으며 1939년 희곡 〈김옥균전〉이 검열에 걸려 주거까지 제한받자 붓을 꺾고 병중에 전국의 사찰을 순례했다. 8·15해방을 맞아 근국청년단운동을 일으키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지병인 폐환으로 숨졌다. 유해는 경기도 화성시 노작로206(노작홍사용문학관노작공원)에 안장되어 있다...
    출생 :
    1900. 5. 17, 경기 용인
    사망 :
    1947. 1. 7
    국적 :
    한국
    도서 다음백과 | 태그 작가
  • 1920년대 한국문학사적 특징, 〈백조〉의 깃발 아래로 〈장미촌〉의 동인들이 모여 만든 순문예지
    나온 노작(露雀) 홍사용(洪思容, 1900~1947)은 고등 학교 시절부터 동창인 박종화 · 정백과 함께 『피는 꽃』이라는 급우지를 만들고, 1919년에는 「푸른 언덕 가으로」 등의 시를 습작한다. 졸업 뒤에는 고향에서 자연에 묻혀 독서로 소일하며 뜻을 키우다가 1920년 박종화 · 정백과 더불어 동인지 『문우(文友)』를...
    시기 :
    19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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