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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인의 집권 계기가 2차 예송
    현종 15년(1674) 2월 효종비 인선왕후가 경덕궁(후일의 경희궁) 회상전에서 승하하였다. 그런데 시어머니뻘 되는 조대비가 여전히 생존해 있었으므로, 앞서 현종 초에 있었던 예송 논쟁이 재연될 수밖에 없었다. 이를 2차 예송, 혹은 갑인예송이라 한다. 인선왕후가 승하하자 예조에서 처음에는 조대비의 상복을 1년복...
  • 붕당정치 朋黨政治
    옥사를 계기로 일어난 기축옥사(己丑獄事)는 그와 관련을 맺고 있던 동인세력까지 확대되어 일시적으로 서인들은 독점적인 세력을 형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죽음이 서인세력에 의한 원사(寃死)로 받아들여짐으로써 명분상 약점을 가지게 서인은 이 일로 정계에서 수세에 몰리게 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동인도 옥사...
    도서 다음백과 | 태그 정치 , 선거
  • 허적 Heo Jeok, 許積
    장살 김홍욱의 신원과 복권을 청하고, 김홍욱의 후손들에게 가해진 연좌제와 불이익을 거두어줄 것을 청하여 사림(士林)의 인망을 얻었다. 55년 11월 동지경연을 거쳐 다시 호조판서가 되었고, 그해 12월 군자감의 곡식을 조사하여 빼돌려진 것을 밝혀내고, 곡식을 빼돌린 자들을 처벌할 것을 건의하여 관철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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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숙종 (조선) Sukjong of Joseon, 粛宗 (朝鮮王)
    성인이 뒤에 이름을 용상에서 광으로 개명했다가 수양제와 이름 음자가 같다는 이유로 다시 돈 또는 순으로 개명하고 자는 명보라 하였다. 그가 태어난 이후 모후 명성왕후는 다른 아들을 생산하지 못했고, 그는 독자로 성장했다. 숙종은 어려서부터 병약하였는데, 모후 명성왕후는 남자형제도 없는데다가 병약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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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석주 Kim Seok-ju, 金錫冑
    합격하게 이담명을 계속 물고 늘어졌다. 1673년 5월 교리, 6월 헌납, 7월 부교리에 임명되었다가 바로 헌납이 되었다. 7월 8일 이조 좌랑, 7월 10일 이조 정랑 등을 지내고, 1674년 2월 부응교가 되었다. 당시 서인의 분파가 가속화되자 그는 한당(漢黨)에 속했다. 한당이던 그는 집권당이던 산당(山黨)과 갈등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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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붕당 Political factions of Joseon, 朋党
    모자라게 데에도 원인이 있다. 이 와중에 과전법은 직전법으로 바뀌면서 기성세력과 신진 세력 사이에 알력이 생겨났다. 이는 달리 보면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립이었다. 이러한 대립은 성종 때까지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으나 연산군 때부터 차츰 불거지게 되었고, 결국 선조 때 김효원(金孝元)과 심의겸(沈義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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