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 김을한 동명, 金乙漢
    정론직필(正論直筆), 바른 주장을 펼치고 사실을 그대로 전해야 하는 것은 언론인의 의무이자 권리다. 폭압적인 일제 강점기와 해방 이후 파란만장했던 대한민국 역사의 한가운데서 필봉을 휘둘렀던 김을한은 그와 같은 언론인으로서의 본분을 지키면서도 인간적인 감성으로 세상을 대했던 몇 안 되는 기자 중에 한 사람...
    출생 :
    1906년
    사망 :
    1992년
  • 김을한 동명(東溟), 金乙漢
    해방 이후 서울신문 동경특파원, 서울신문 이사 등을 역임한 언론인.|내용 호는 동명(東溟). 서울 출생. 서울교동보통학교를 거쳐 양정고등보통학교에 다니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에 진학하였다. 재학중에는 우리 나라 최초의 신극운동단체인 토월회(土月會)에 관계한 일도 있었는데, 1923년 관...
    시대 :
    현대
    출생 :
    1906년
    사망 :
    1992년
    경력 :
    만몽일보 창립위원, 서울신문 이사
    유형 :
    인물
    직업 :
    언론인
    대표작 :
    사건과 기자, 그리운사람들, 신문야화, 인간이은, 한국신문사화, 월남선생일화집, 천리구 김동서
    성별 :
    분야 :
    언론·출판/언론·방송
  • 김을한
    1905년 ~ 1992년 5월 31일)은 대한민국의 기자였다. 동명(東溟) 김을한은 190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을사년에 태어났다 하여 이름을 을한(乙漢)으로 지었다. 병자호란 때의 충신 김상헌의 후손인 그는 교동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양정고보 2학년 때 3·1운동을 맞았다. 그 직후 도쿄로 유학하여 와세다대학교에 진학했다....
    도서 위키백과
  • 이우 성길, 李鍝
    업무가 종료되었다. 고분고분한 성격이 아니었던 이우는 그 동안 이왕직 직원들을 꽤나 골탕 먹였던 모양이다. 조선일보와 매일신보의 사회부 기자였던 김을한에 따르면 이왕직 회계과장 사토는 이우에 대하여 이렇게 투덜거렸다고 한다. “이건 공은 온화한 분이라 문제가 없지만, 이우 공은 측근들의 말을 도무지 듣지...
    출생 :
    1912년 11월 15일
    사망 :
    1945년 8월 7일 (32세)
  • 덕혜옹주 조선 고종의 딸
    조국에서 잊히고 남편에게 버림받은 덕혜옹주는 자신만의 세계에 웅크린 채 꿈꾸듯 살아갔다. 이런 그녀의 존재가 어린 시절 약혼할 뻔했던 김장한의 친형 김을한 기자에 의해 세상 밖으로 알려졌다. 1950년 서울신문 도쿄 특파원으로 부임한 김을한 기자는 소 다케유키에게 전화를 걸어 덕혜옹주의 근황을 물었지만...
    시대 :
    근대
    출생 :
    1912년 5월 25일
    사망 :
    1989년 4월 21일
    본관 :
    전주(全州)
  • 토월회 土月會
    정식으로 조직된 것은 1923년 5월 경, 당시 동경에서 대학을 다니던 박승희(朴勝喜)·김복진(金復鎭)·김기진(金基鎭)·이서구(李瑞求)·박승목(朴勝木)·김을한(金乙漢)·이제창(李濟昶) 등이 시작한 모임이었다. 그러나 무대예술 지망의 박승희를 제외하고는 문학의 김기진, 의학의 박승목, 조각의 김복진, 미학의...
    시대 :
    근대
    설립 :
    1923년 5월
    성격 :
    극단, 예술단체
    유형 :
    단체
    해체 :
    1946년
    설립자 :
    박승희(朴勝喜), 김복진(金復鎭), 김기진(金基鎭), 이서구(李瑞求), 박승목(朴勝木), 김을한(金乙漢), 이제창(李濟昶)
    분야 :
    예술·체육/연극
  • 토월회 土月會
    박승희가 제안하여 창립총회를 가졌는데, 창립동인은 김기진·김복진·박승목·이서구·김을한·이제창 등 7명이다. 뒤에 연학년·이수창이 가입했고, 객원으로 시인 김명순과 임노월이 가담했다. 토월회라는 명칭은 '현실(土)을 도외시하지 않고 이상(月)을 좇는다'라는 뜻이다. 1923년 7월 4~5일 조선극장에서 제1...
    도서 다음백과 | 태그 연극
  • 영친왕 부처 관련 편지 및 기타 문서
    유물설명 제작년도: 1961년 3월 22일 1961년 3월 22일 주일특파원 기자 김을한이 영친왕 부부에게 환국과 관련한 추후 방안에 대하여 쓴 편지이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삼가 답장을 올립니다. 16일자 편지는 지금 막 받았습니다. 계속 건강하시다는 것을 무엇보다 기쁘게 생각합니다. 지금은 이국장이 출발했기 때문에...
    분류 :
    유물 > 기타
    크기 :
    세로: 18.1cm, 가로: 30.2cm
    재질 :
    종이
  • 안종화 安鍾和
    일본이 세운 최초의 영화사인 조선키네마주식회사에 입사하여 〈해(海)의 비곡〉의 주연을 맡았다. 1925년 무대예술연구회 제2회 시연에 참가했고 1927년 김을한(金乙漢)·이경손(李慶孫)과 함께 조선영화예술협회를 발족하여 한국영화 발전에 앞장섰다. 1930년대에 영화 〈꽃장사〉·〈노래하는 시절〉·〈은하에...
    출생 :
    1902, 서울
    사망 :
    1966. 8. 21
    국적 :
    한국
    도서 다음백과 | 태그 영화
  • 윤백남 尹白南
    활동했다. 1925년 영화사 '윤백남 프로덕션'을 설립하여 〈심청전〉·〈개척자〉를 제작했으나 흥행부진으로 영화사는 곧 해체되었다. 1928년 이기세·김을한·안종화·염상섭 등과 함께 문예영화협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영화연구와 신인교육을 시도했으며, 1930년 동아일보사가 창간 10주년 기념으로 제작한 영화...
    출생 :
    1888. 10. 4, 충남 공주
    사망 :
    1954
    국적 :
    한국
    도서 다음백과 | 태그 작가
  • 박제행 朴齊行
    신인연기자 양성과정을 거쳐 무대에 올랐다. 이후 토월회가 극장 광무대를 무대로 공연할 때는 주연배우로도 활약하였으나, 1926년 토월회를 탈퇴하여 김을한·김기진 등과 잠시 극단 백조회를 조직하기도 하였다. 이후 토월회 재기 공연에 참여한 뒤 1929년의 〈아리랑고개〉를 계기로 연기력을 인정받아 연극과 영화에...
    도서 다음백과 | 태그 배우
  • 박제행 朴齊行
    양성과정을 거쳐 무대에 처음으로 등단하였다. 토월회가 극장 광무대(光武臺)를 무대로 공연할 때 주연배우로 활약하였으며, 1926년에는 토월회를 탈퇴하여 김을한(金乙漢)·김기진(金基鎭) 등과 잠시 극단 백조회(白鳥會)를 조직하기도 하였다. 1931년 여름 극예술연구회의 연구생으로 발탁되어 배우로서 새롭게 등장...
    시대 :
    근대
    유형 :
    인물
    직업 :
    배우
    성별 :
    분야 :
    예술·체육/연극
이전페이지 없음 현재페이지1 2 3 다음페이지 없음

멀티미디어2건

김을한
왼쪽부터 윤석중 · 최남선 · 이광수 · 마해송 · 김을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