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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원화성 관광특구
    수원화성은 조선왕조 제22대 정조대왕이 세자에 책봉되었으나 당쟁에 휘말려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뒤주 속에서 생을 마감한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침을 양주 배봉산에서 조선 최대의 명당인 수원 화산으로 천봉하고 화산 부근에 있던 읍치를 수원 팔달산 아래 지금의 위치로 옮기면서 축성되었다. 수원화성은 정조의...
    위치 :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780 (팔달로2가)
  • 장조 추상시호 금보 莊祖 追上諡號 金寶
    만든 장조의 금보이다. 장조는 이복형인 효장세자[후에 진종으로 추존]가 요절한 후 영조의 나이 40세가 넘어서 출생하여 1년만에 왕세자에 책봉되었다. 이후 뒤주에 가두어 8일만에 돌아가시게 하였다. 영조는 장례 때 친히 나아가 스스로 신주(神主)에 제주(題主)를 하면서 나라를 위하여 부득이한 조치였음을 알리기...
    분류 :
    유물 > 어보
    크기 :
    세로: 9.7cm, 가로: 9.8cm, 높이: 7.6cm
    재질 :
    금속
  • 장조 추상존호 옥보 莊祖 追上尊號 玉寶
    한다"는 의미가 있다. 장조는 이복형인 효장세자[후에 진종으로 추존]가 요절한 후 영조의 나이 40세가 넘어서 출생하여 1년만에 왕세자에 책봉되었다. 이후 뒤주에 가두어 8일만에 돌아가시게 하였다. 영조는 장례 때 친히 나아가 스스로 신주(神主)에 제주(題主)를 하면서 나라를 위하여 부득이한 조치였음을 알리기도...
    분류 :
    유물 > 어보
    크기 :
    세로: 10.2cm, 가로: 10.3cm, 높이: 9.9cm
    재질 :
    옥석
  • 정조 추상존호 금보 광무 3년 제작
    올린 시호이다. 정조는 1759년 세손에 책봉되고 1762년 2월 10세의 나이로 가례(嘉禮)를 올렸다. 그로부터 4개월 뒤 장헌세자가 폐서인(廢庶人)이 되었다가 뒤주 속에서 갇혀 굶어 죽는 비극의 참화를 당한 후 효장세자(孝章世子)의 후사(後嗣)가 되었으며, 1775년 연로한 영조를 대리하여 국정을 다스리다가 1776...
    분류 :
    유물 > 어보
    크기 :
    세로: 9.8cm, 가로: 9.8cm, 높이: 7.5cm
    재질 :
    금속
  • 장조 추상존호 옥책 莊祖 追上尊號 玉冊
    생후 1년만에 세자로 책봉되었으며, 1749년 왕명으로 대리청정을 시작하였으나 노론과 부왕과의 마찰로 정치적 갈등을 빚다가 영조 38년(1762)에 왕명으로 뒤주에 갇혀 아사하였다. 정조 즉위 후 ‘장헌’이라는 존호를 받았다. 정조는 재위 중 그를 왕으로 추존하려는 시도를 하였으나 노론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분류 :
    유물 > 어책
    크기 :
    세로: 26.4cm, 길이: 260.0cm, 두께: 1.8cm, 폭: 16.7cm, 편폭(片幅): 3.3cm
    재질 :
    청옥(靑玉), 동(銅), 비단
  • 나경언
    정보나경언은 조선 영조 대의 인물로 1762년 당시 형조판서 윤급의 종이었다. 그는 나경언의 고변(또는 나경언의 상변)을 통해 임오화변(영조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사건)이 일어나는 것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사도세자의 장인인 홍봉한이 1761년 3월 우의정에서 8월 좌의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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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선복
    10년 이상 훈련대장을 역임했으며, 당대 별명은 무종(武宗)이었다. 자(字)는 사초(士初), 본관은 능성. 한성부 출신이다. 사도세자가 영조의 명으로 뒤주에 갇혔을 때 뒤주를 감시하는 역할을 하였다. 1738년(영조 14년) 식년과 생원시에 3등으로 합격, 생원이 되었으며 무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올랐다. 형조참판, 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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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석문 (1713년)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사실 (士實), 호는 돈재(水+豚齋), 별호는 북비공(北扉公)이다. 1762년(영조 38년) 임오화변 당시 사도세자가 영조의 명으로 뒤주에 들어가 갇혀죽게 되자, 그는 세손 산(후일의 정조)을 등에 업고 궐안으로 들어가도록 했다. 1739년(영조 15년) 권무과(權武科)에 급제하고, 그 해 정시 무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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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봉한
    이천보, 민백상 등이 갑자기 의문의 최후를 맞이하자 일약 승진, 우의정에 발탁되었다. 그 뒤 영의정에 재직 중 사위인 사도세자를 영조의 명을 받아 뒤주에 가두어 처형한 인물이다. 영조의 탕평책에 부응하여 당쟁의 폐해, 인재의 발탁 등의 내용을 담은 시무 6조를 제시하는 등 국정 쇄신에 노력하였다. 영조의 탕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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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비장전
    훼절담(男性毁節談)’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안에 작은 삽화(揷話)들이 들어 있다. 기생이 관리를 농락한 이야기인 ‘기롱설화(妓弄說話)’, 사람이 쌀뒤주 속에 들어간 이야기인 ‘미궤설화(米櫃說話)’, 이를 뽑히는 이야기인 ‘발치설화(拔齒說話)’ 등이 들어 있다. 또 배 비장과 방자가 하는 ‘내기’가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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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헌경왕후 Lady Hyegyŏng, 恵慶宮洪氏
    못하게 되자 이에 세자를 제거할 계책을 내어 형조에 글을 올렸다. 1762년(영조 38년) 7월 4일(윤5월 13일) 부왕 영조는 사도세자를 폐하여 서인으로 삼고, 뒤주에 가두는 참혹한 형벌을 내렸다. 1762년(영조 38년) 7월 12일(윤5월 21일)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세자는 뒤주에서 나오지 못하고 폭염 속에서 사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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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산군부인 송씨
    구사맹의 넷째 아들 구굉의 5대손으로, 조선 영조, 정조 때의 무신 출신 정승 구선복, 무신 구선행(具善行) 등과 사촌간이다. 구선복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혔을 때 뒤주를 지켰던 인물이었다. 후에 1792년 5월 5일 서유린(徐有隣)은 그를 탄핵하는 상소문에서, 세자가 뒤주에 갇힌 날 흉패한 짓을 했다고 하는데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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