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
민응협 인보(寅甫), 閔應恊왜신 접대를 수행하였다. 그 결과 1646년 동래부사가 되었으며, 부사로서 형률 집행에 매우 근엄하고, 모든 일을 잘 처리하여 크게 명성을 얻었다. 이때 왜관(倭館)의 담이 헐자 왜인들이 이를 이용, 왜관을 넓혀줄 것을 강청하였으나, 민응협은 이를 단호히 거절하고 그들의 세를 꺾었다. 1649년 동래부사에서 안변부사...
- 시대 :
- 조선
- 출생 :
- 1597년(선조 30)
- 사망 :
- 1663년(현종 4)
- 경력 :
- 대사성, 대사헌, 병조참판
- 유형 :
- 인물
- 직업 :
- 문신
- 성별 :
- 남
- 분야 :
- 역사/조선시대사
- 본관 :
- 여흥(驪興, 지금의 경기도 여주)
-
소케문서 宗家文書외교와 무역관련 문서, 쯔시마 통치와 에도 막부와의 정치적 관계를 나타내는 문서로 크게 나눠진다. 편찬/발간 경위 1630년부터 약 250여년에 걸쳐 부산의 왜관, 쯔시마와 에도(도쿄)에서 작성되었다. 서지사항 7곳에 약 120,760 여점이 전래되고 있으며, 이 중 2005년, 2009년, 2010년에 규슈국립박물관, 국회도서관...
- 시대 :
- 조선 후기
- 유형 :
- 문헌
- 분야 :
- 정치·법제/정치
-
약조제찰비 約條制札碑[건립 경위] 1678년(숙종 4) 왜관이 용두산 공원 주변으로 이관되자, 동래부사 이복(李馥)은 신관인 초량 왜관에 맞게 왜관 체제를 정비하기 위해 7항목으로 된 ‘무오년 이관 후 절목[무오 절목]’을 마련하였다. 이 절목은 그 후 다시 검토가 이루어졌다. 1682년(숙종 8) 파견된 통신사[정사 윤지완]는 대마도 당국자...
- 분야 :
- 역사
- 지역 :
- 부산광역시 남구
출처 한국 향토문화 전자대전 -
임역 급 왜인 출입식 任譯 及 倭人 出入式[제정 경위 및 목적] 왜관(倭館) 운영상 조선인과 일본인의 왜관 출입이 잦아지면서 이들의 불법적인 접촉이 문제가 되었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1683년(숙종 9)에는 동래부의 출입 허가를 받은 훈도와 별차 이외에 조선인과 일본인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였다. 또한 초랑 왜관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은 봄가을 이외에...
- 분야 :
- 역사
- 지역 :
- 부산광역시 중구
출처 한국 향토문화 전자대전 -
조선 시대의 대중 교류 朝鮮 時代의 對中 交流통로는 사행(使行)[사절]이었다. 조선에서 명(明)에 가는 사절을 조천사(朝天使)라 한 데 비해, 청에 가는 사절을 연행사(燕行使)라 불렀다. 조선 후기 동래 왜관에서 이루어진 대일 수출품은 주로 중국산 비단실[생사(生絲)·백사(白絲)]과 비단이었고, 수입품은 일본산 은(銀)이었다. 수입된 일본산 은은 중국산...
- 분야 :
- 역사
- 지역 :
- 부산광역시
출처 한국 향토문화 전자대전 -
개항장 開港場라고 하여 산이 가마솥 모양과 같아 부산(釜山)이라고 하였으며, 이후 계속 ‘부산’이라고 하였다. 개항 이전 조선에 일본 상선이 자유롭게 드나들도록 왜관이 설치되었는데, 1407년(태종 7) 처음으로 부산포[현재의 부산진 시장 일대의 자성대 주변]와 제포[경상남도 진해시]에 설치되었다. 왜관은 일본 사절과 상인이...
- 분야 :
- 정치·경제·사회
- 지역 :
- 부산광역시
출처 한국 향토문화 전자대전 -
금산입각방 약조 禁散入各房 約條매매하고, 매매가 끝나면 남은 물품을 가지고 대청에서 퇴거하는 형태를 말한다. 이 약조에는 잠상 금지, 국가 기밀 누설 금지, 조선인의 왜관 출입 규정, 조선 관인의 왜관 경비, 재관 일본인의 통행 범위 등이 언급되어 있다. 일본인의 통행 범위에 관한 조항을 제외하면 기본적으로 왜관의 경비와 무역 업무에 관여...
- 분야 :
- 역사
- 지역 :
- 부산광역시
출처 한국 향토문화 전자대전 -
「초량왜관사」 草梁倭館詞草梁倭館詞)」는 1801년 신유사옥(辛酉邪獄)과 황사영 백서 사건에 연루되어 김해로 유배된 조선 후기 문인 이학규(李學逵)[1770~1835]가 1811년 초량에 와서 왜관을 방문하고 감회를 읊은 연작 한시(連作漢詩)이다. 「초량왜관사」는 이학규의 문집인 『낙하생전집(洛下生全集)』에 실려 전한다. 「구성」 「초량왜관사...
- 분야 :
- 구비 전승·언어·문학
- 지역 :
- 부산광역시 중구
출처 한국 향토문화 전자대전 -
『계본 등록』 啓本 謄錄있으며, 특히 17세기 초반 동래부(東萊府)의 사정을 알 수 있는 기록이 많다. 제2책에는 대일 공무역으로 수입되는 동, 납, 철에 대한 수입과 운송, 두모포 왜관에 있는 머물고 있는 일본인 즉, 유관 왜인(留館倭人)의 수, 왜관 감찰, 일본 선박의 입항 및 문정(問情), 일본 사절에 대한 다례(茶禮) 등의 의례 내용이...
- 분야 :
- 역사
- 지역 :
- 부산광역시
출처 한국 향토문화 전자대전 -
임신약조 壬申約條[개설] 조선 전기 부산포 왜관을 비롯한 삼포 왜관 지역에서 왜란이 발생하면서 조선은 삼포를 폐쇄하는 조치를 취하게 되었다. 이에 경제적으로 곤란함을 겪게 된 대마도주(對馬島主)는 일본 국왕 명의의 사신을 파견하여 교역 재개를 요청해 왔고, 당시 북방 민족 문제 및 왜구 활동의 재개 등을 염려한 조선 조정이...
- 분야 :
- 역사
- 지역 :
- 부산광역시
출처 한국 향토문화 전자대전 -
『감동 어기 전말 등록』 監董 漁基 顚末 謄錄1827(순조 27) 6월 24일 기록부터 시작된다. 마지막 기록은 1829년(순조 29) 3월 23일 기록이다. 현재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초량 왜관의 크고 작은 역을 담당하는 소통사(小通事)는 신분은 낮지만 그 직임은 무거웠다. 조선에서는 소통사의 처우가 너무 박하면, 그들이 초량 왜관과 밀착...
- 분야 :
- 역사
- 지역 :
- 부산광역시
출처 한국 향토문화 전자대전 -
거류지 조계, 居留地목적으로 만들어진 경우와 군사적 정치적 목적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교류를 목적으로 한 것이라면 조선에는 1678년(숙종4년) 개관한 초량왜관이 있었다. 그곳에는 500명이상의 일본인이 거주하였다. 초량왜관은 양 200년간 존속하다가 1876년 개항이후 일본인 전관거류지로 바뀌었다. 개항 이후 한국...
- 시대 :
- 근대
- 성격 :
- 지역
- 유형 :
- 제도
- 시행일 :
- 1877년 1월 30일
- 폐지일 :
- 1914년 4월 1일
- 분야 :
- 역사/근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