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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립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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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조선 중기 임진왜란 이후 광해군이 명과 청(후금) 사이에서 실시했던 외교 정책.

광해군은 당시 명·청 교체기의 국제적 변동 속에서 명분보다는 실리적인 외교를 추진했다. 그는 여진족이 후금(後金)을 건국하여 강성해지자 국방대비책으로 대포를 주조하고, 평안감사 박엽(朴燁), 만포첨사 정충신(鄭忠臣)을 임명하여 국방을 강화했다. 한편으로 명나라가 후금 정벌을 위해 원병을 요청하자, 1618년에 강홍립(姜弘立)·김경서(金景瑞)에게 1만여 명을 주어 명군을 원조하게 하면서도 형세를 보아 유연하게 대처하라고 명령했다. 명군이 패하자, 강홍립은 부차(富車) 전투에서 후금에게 투항한 뒤 본의 아닌 출병임을 해명하여 후금의 침략을 모면하게 되었다. 이는 명나라와 후금 사이에서 명분에 치우치지 않은 채 실리를 택한 외교 정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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