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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임진왜란 중 열렸던 명나라와 일본의 강화 회의가 결렬되면서 일본의 재침략을 가져옴.

임진왜란 발발 후인 1592년 6월부터 명나라와 일본 사이에는 강화 회담이 진행되었다. 명과 일본 간의 강화 회의는 5년을 끌다가 결렬되고 말았다. 본래 일본의 도요토미는 강화의 조건으로 명나라의 황녀(皇女)를 일본의 후비(後妃)로 보낼 것, 일본과의 무역을 재개할 것, 조선 8도 중 4도를 일본에 할양할 것, 조선의 왕자 및 대신 12명을 인질로 줄 것 등을 요구했다. 명나라의 사신 심유경은 이 요구가 절대 받아들여질 수 없음을 알고 도요토미를 일본의 왕으로 책봉하고 조공을 허락해줄 것을 요구한다고 본국에 거짓 보고했고, 명은 1596년 사신을 파견해 도요토미를 일본왕으로 책봉하는 책서와 금인(金印)을 전했다. 이에 도요토미는 크게 노하여 이를 받지 않고 조선 재침략을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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