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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07. 12. 14, 아일랜드 코크 코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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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885. 8. 18, 캐나다 몬트리올 |
국적 | 캐나다 |
요약 캐나다의 언론인·정치가.
1851~54년에 캐나다 연합주의 공동총리를 역임했다.
힝크스는 1831년 캐나다의 요크(1834년의 토론토)로 이민을 왔으며, 1835년까지 어퍼캐나다은행의 경쟁사인 피플은행의 관리자로 일했다. 1838년에 그는 토론토에서 온건자유주의 신문인 〈이그재미너 Examiner〉를 창간했으며, 이 신문을 통해 내각책임제를 주창했다. 〈이그재미너〉는 1855년에 〈글로브 The Globe〉(토론토 소재)와 합병했다.
1840년 어퍼캐나다와 로어캐나다가 연방을 이루어 캐나다이스트와 캐나다웨스트로 재편된 뒤, 힝크스는 자유당의 공천을 받아 옥스퍼드에서 출마하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연합주의회에 들어가 회계감사위원장과 집행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1843년에 의원직에서 물러나 〈몬트리올 타임스 Montreal Times〉의 편집인이 되었으며, 유력 야당 잡지인 〈파일럿 Pilot〉을 창간했다. 1848년 힝크스는 로버트 볼드윈과 루이스 히폴리트 라폰테인이 공동 총리로 있는 캐나다 연합주 정부에서 감사위원장을 다시 맡았다. 1851~54년에 오그스틴 노버트 모린과 함께 캐나다 연합주 총리로 재임했다. 총리로 재임하면서 힝크스는 철도개발을 독려했으며, 1854년에는 미국과 호혜조약을 맺었다. 또한 힝크스-모린 정부는 10진 화폐단위를 도입했다. 1855년에 힝크스는 바바도스와 윈드워드 제도의 총독이 되어 1862년까지 재임했고, 1862~69년에는 영국령 가이아나의 총독으로 재임했다.
캐나다로 돌아온 그는 1869~73년에 존 맥도널드 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지냈다. 1873년 의원으로 재선출되었지만 그해에 내각에서 물러났고, 국정활동에 염증을 느껴 이듬해에 캐나다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다. 1869년에 기사작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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