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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547, 잉글랜드 데번 엑서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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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619. 1. 7, 런던 |
국적 | 영국 |
요약 르네상스 시기에 활동한 최초의 대표적 영국 화가.
그의 서정적인 초상화들은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에 유행한 세밀초상화의 기법을 최고의 수준으로 끌어올렸으며, 16세기 후반과 17세기초 잉글랜드에서 초상화의 개념을 형성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힐리어드는 1560년에 최초의 세밀초상화를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1570년경 엘리자베스 1세의 세밀초상화가가 되어 그녀와 궁정의 주요인물들의 초상화를 많이 그렸다. 잠깐 프랑스를 방문해 알랑송 공작을 위해 일했지만 아내가 아이를 낳을 예정이었기 때문에 1578년초에 돌아왔다. 힐리어드는 세밀화가뿐만 아니라 금세공인과 보석세공인으로서도 활동했는데, 1584년 엘리자베스 여왕의 2번째 국새를 도안했다. 1603년 제임스 1세가 왕위를 계승한 뒤에도 계속해서 궁정화가로 남아 있었지만, 새 궁정의 분위기가 그의 미술 경향과 그다지 맞지 않는다고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초상화 기법에 관한 논문 Treatise on the Arte of Limning〉(1600경)에서 자신의 화법을 논하면서 자신의 활발하고 붙임성 있는 기질에 관해서 간접적으로 많이 드러내고 있다. 전생애에 걸쳐 재정적으로 어려웠으며, 1617년에는 빚 때문에 한동안 감옥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그의 미술이 당시 잉글랜드에서 활동하던 독일인 초상화가 소(小)한스 홀바인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는데, 세밀화인 〈장미꽃밭 속 한 그루 나무에 기대고 있는 어느 젊은이 An Unknown Youth Leaning Against a Tree Among Roses〉(런던 빅토리아앤드앨버트 박물관)·〈불꽃 앞의 어느 남자 An Unknown Man Against a Background of Flames〉(빅토리아앤드앨버트 박물관)에서 볼 수 있듯이 단조롭고 뚜렷한 윤곽을 선호한 것은 확실히 홀바인의 영향을 나타낸다. 아들인 로렌스 힐리어드(1582~1640경)도 세밀화를 그렸지만, 그보다 훨씬 더 유명한 제자는 아이작 올리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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