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처 다음백과

황화론

다른 표기 언어 yellow peril , 黃禍論

요약 19세기 후반 유럽인종들 사이에 일어난 황색인종 경계론.

장래에 황색인종이 흥기하여 백인인종에게 해를 입힐 것이라는 논리로 이는 동양인 특히 중국인의 값싸고 풍부한 노동력에 대한 공포와 경계에서 비롯되었다. 독일의 지리학자로서 중국 문제의 최고권위자라고 불리는 페르디난트 폰 리히트호펜은 유럽인이 중국인에게 중국의 거대한 천연자원과 노동력 이용법을 가르치는 것은 자살행위라고 했다.

이어서 영국의 찰스 H.피어슨 교수도 1893년에 런던에서 간행된 저작 〈국가의 생명과 성격-일예견 National Life and character, A forecast〉에서 유럽 국민은 전세계가 아리아 민족과 그리스도 신앙에 따르도록 운명지어졌다고 생각하고 유럽인들끼리 우월권을 가지고 다투었지만, 앞으로는 예속민이라고 무시했던 사람들에 의해 압도되고 추격당할 것이라고 했다.

미국의 역사가 헨리 브룩스 애덤스도 1895년에 간행한 저서 〈개화와 쇠퇴의 법칙 The Law of Civilization and Decay〉에서 구미열강의 우월을 낳았던 기계문명이 동양에도 옮겨져 공장이 인도·일본·중국에서도 정비될 것이며, 그 결과 여러 백인민족은 여러 동양민족의 값싼 노동력에 의해 압도당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값싼 노동력에 의해 생산된 동양의 생산품은 좀더 유리한 조건으로 유럽 여러 도시에서 팔릴 것이라고 했다.

1894년 일본이 청일전쟁에서 중국을 격파하자, 황화론의 대상은 중국으로부터 일본으로 옮겨왔다. 그때 독일의 황제 빌헬름 2세는 황화론을 이용해서 러시아를 자극하여 러시아가 아시아 쪽을 침략하도록 했다. 이로써 유럽에 대한 러시아의 압력을 약화시키려는 동시에 아시아에 침략하려는 프랑스·영국·러시아와의 관계를 악화시키려고 했다. 이에 러시아는 1895년 청일전쟁이 끝난 뒤에 프랑스·독일과 함께 3국간섭을 하여 일본으로 하여금 랴오둥 반도[遼東半島]를 청나라에 되돌려주도록 했다.

그 후 러시아는 점점 극동으로 진출함으로써 1904년에는 급기야 일본과 전쟁을 치르게 되었는데, 이때 일본이 승리함으로써 러시아는 아시아에서 후퇴했다. 한편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더욱더 황화론의 경계대상이 되었다. 그리하여 러일전쟁 이후에는 황화론이 대두되지는 않았지만, 황색인종에 대한 인종적 편견은 그후에도 오랫동안 일부 백인종 나라에서 유지되고 있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출처

다음백과
다음백과 | cp명Daum 전체항목 도서 소개

다양한 분야의 전문 필진으로 구성. 시의성 이슈에 대한 쉽고 정확한 지식정보를 전달합니다.

TOP으로 이동


[Daum백과] 황화론다음백과, Daum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