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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황주와 해주의 첫글자로 도의 이름이 정했다. 고구려와 백제 세력이 부딪치는 곳이었으나 4세기 후반 장수왕대에 고구려의 영토가 되었고 삼국시대 후반에는 신라가 이 지역을 차지하였다.
고려 건국으로 관내도에 소속되었다가, 1018년에 서해도로 분리되었다. 1395년에 풍해도로 개칭하고, 1417년에 황해도로 이름을 바꾸고 해주에 도의 중심지를 두어 조선시대에 유지되었다.
1616~23년에 해주가 현이 됨에 따라 황연도로 이름을 바꾸기도 했다. 1950년 6·25전쟁 후 북한에 소속되었으며, 1954년에 황해남도와 황해북도로 분리되었다.
이 지역의 대표적인 고장인 황주(黃州)와 해주(海州)의 첫글자로 도(道)의 이름이 정해졌다.
선사시대부터 사람의 거주가 시작되었으며, 구월산 일대 아사달(阿斯達)을 고조선 후기 문화의 중심지로 비정하기도 한다. 이후 한사군의 낙랑군·대방군 등이 잠시 설치되기도 했으며,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와 백제의 세력이 부딪치는 곳이었으나 4세기 후반 장수왕대에 이르러 고구려가 한강 이북 지역을 장악함에 따라 고구려의 영토가 되었다. 삼국시대 후반에는 신라가 이 지역을 차지하고,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 중엽 경덕왕대에 이르러 대곡성(大谷城 : 平山)·오곡성(五谷城 : 瑞興) 등 성을 구축하고 군현을 설치하여 방어를 강화했다. 고려가 건국되고 개성이 수도가 됨에 따라 개성에 가까운 이 지역은 995년(성종 14)에 관내도에 소속되었다가, 1018년(현종 9)에 서해도(西海道)로 분리되었다. 1391년(공양왕 3)에는 평산·곡산·수안·재령·서흥·신계(新溪)·협계(俠溪) 등을 경기우도로 이관했다가 조선초인 1394년(태조 3)에 다시 환속했다. 1395년에 풍해도(豊海道)로 개칭하고, 1413년(태종 13)에 경기도에서 연안(延安)·배천·강음·우봉(牛峰)을 본도로 편입했다. 1417년에 황해도로 이름을 바꾸고 해주에 도의 중심지를 두어 조선시대에 유지되었다. 그러나 1616~23년에 해주가 현으로 강등됨에 따라 황연도(黃延道)로 이름을 바꾸기도 했다. 지방제도 개정에 의해 1895년에 23부제(府制)가 실시되고 모든 군현이 군(郡)으로 통일되었다. 이때 황해도에 소속되었던 군들은 해주부(海州府)·개성부·평양부(平壤府)에 나누어 소속되었다가, 1896년에 13도제가 실시되어 황해도로 다시 이름을 회복했다. 1909년에 강령군을 폐지하고 옹진군에, 풍천군을 송화군에, 장련군을 은율군에, 문화군을 신천군에 각각 병합하여 군현수가 줄어들었으며, 1914년 군면 폐합 때 다시 연안군·배천군이 연백군으로, 토산군이 금천군에 합속되었다. 1938년에 해주가 시로 승격됨에 따라 해주군을 벽성군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950년 6·25전쟁 후 북한에 소속되었으며, 1954년에 황해남도와 황해북도로 분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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