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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은 예로부터 활을 잘 쏘는 민족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설문해자 說文解字〉 이(夷)자조를 보면 '夷'란 대인이 활을 쏘는 형상으로 우리나라를 동이라고 했음은 여기에서 기인한다. 또 말 위에서 활로 노루를 사냥하는 모습이 고구려 무용총에 그려져 있는 것에서도 활은 한민족의 생활에서 매우 흔한 도구임을 알 수 있다. 예로부터 활 잘쏘는 이를 선사(善射)라 했는데 고구려 건국 시조인 주몽(朱蒙)은 선사자를 가리키는 부여말이다.
주몽은 22세 때 비류왕과 활을 겨루어 100보 밖에 옥지환(玉指環)을 맞췄다는 일화가 전하며, 백제의 다루왕은 사냥을 나가 쌍록(雙鹿)을 연이어 맞췄다고 한다. 또 고려의 의종은 과녁 위에 촛불을 켜놓고 맞췄다는 기록이 전한다. '활'이라는 말은 〈계림유사〉에 '궁은 활이다'(弓曰活), '쏘는 것은 활 쏘아'(射曰活素)라 한 것에서 '활'이 우리나라 고유어이며 '화살'은 '활소'에서 유래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활과 화살은 고조선의 단궁에서 비롯되었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의 기록에 따르면 낙랑단궁(樂浪檀弓)이라 하여 중국과 다른, 우리 고유의 활이 있었음을 기록하고 있고 그밖의 중국문헌에도 숙신의 호시석노(楛矢石弩), 예의 단궁, 고구려의 맥궁에 관한 기록이 있다. 이익의 〈성호사설〉에는 태조가 대우전(大羽箭)을 써서 화살로 삼았다고 했다.
단궁의 맥은 고조선, 삼국시대를 거쳐 조선시대까지 이어졌는데 삼국시대에 새로 생겨난 각궁은 고구려의 맥궁과 같은 것으로 백제와 신라에서 쓰였던 듯하다. 화살은 남북이 서로 달라서 고구려에는 호시, 신라·백제에서는 죽전(竹箭)을 썼다. 고려의 군제를 보면 당시의 활과 화살의 종류를 짐작할 수 있다. 고려의 군제에는 경궁·사궁(射弓)·정노(精弩)·강노(剛弩) 등의 특과병이 있었으며, 활은 동궁(彤弓)·장엄궁(莊嚴弓)·세궁(細弓)이 쓰였고, 화살로는 세전(細箭)·유엽전(柳葉箭)·대우전·편전(片箭) 등이 쓰였으며 이때 새롭게 철전(鐵箭)이 생겨났다.
조선시대에는 전투용·수렵용·연습용 등의 용도에 따라 활의 종류가 나누어진다. 무과 응시용의 정량궁(正兩弓), 궁중연사(宮中燕射)·향음주례(鄕飮酒禮)용의 예궁(禮弓), 전투·수렵용의 목궁(木弓)과 철태궁(鐵胎弓), 전투용의 철궁, 달리는 말 위에서 쏘는 전투용의 고(), 수렵·연회·전투훈련용의 각궁 등이 쓰였다. 화살의 종류로는 목전(木箭)·철전·장전(長箭)·아량(亞兩)·편전·동개살·장군전(將軍箭)·세전·유엽전 등이 쓰였다.
활 쏘는 기술은 대개 구전으로 전해져 정확한 자료가 없으나 그 대강을 〈조선의 궁술〉에서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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