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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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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425(세종 7)
사망 1475(성종 6)
국적 조선, 한국

요약 계유정난 때 김종서 등을 제거하는 등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을 도와 세조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1450년(문종 즉위) 추장문과에 급제했다. 1451년 뒤의 세조가 되는 수양대군이 <진법>을 편찬할 때 이에 참여했다. 다음해 단종이 즉위하고 재상들의 권력이 커지자 수양대군에게 왕권의 확립 및 강화를 건의하면서 권람을 참모로 추천했다. 1453년(단종 1)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을 도와 정난공신 2등에 올랐다. 1460년 모련위 여진의 난이 일어나자 신숙주의 부장으로 출전하여 이를 진압했다. 1469년(예종 1) 영의정에 올랐으며, 1471년(성종 2) 성종의 왕권에 위협적이었던 구성군을 몰아낸 공으로 좌리공신 1등에 책록되었다. 권세를 휘둘러 축재를 하고 가노들을 동원하여 사람을 죽이는 등 전횡이 심했으나 세조의 신임이 두터워 처벌받지 않았다.

본관은 회인. 초명은 우성. 자는 수옹, 호는 영해. 아버지는 제년이다.

1450년(문종 즉위) 추장문과에 급제했다. 승문원부정자·한성부참군·통례문봉례를 거쳐 1451년 수양대군(뒤의 세조)이 〈진법 陳法〉을 편찬할 때 이에 참여했다. 다음해 단종이 즉위하고 재상들의 권력이 커지자 수양대군에게 왕권의 확립·강화를 건의하면서 권람을 모사로 추천했다.

1453년(단종 1)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을 도와 김종서(金宗瑞) 등을 제거해, 정난공신 2등에 올랐다. 1455년(세조 1) 예조참의에 임명되었으며, 좌익공신 3등으로 인산군에 봉해졌다. 1460년 모련위 야인(여진)의 난이 일어나자 신숙주(申叔舟)의 부장으로 출전하여 이를 진압했다. 이후 예조판서·우의정이 되었고, 1468년 세조가 죽자 신숙주·한명회(韓明澮) 등과 함께 원상으로 서정을 처리했다. 1469년(예종 1) 좌의정에 올라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그해 영의정이 되었다. 1470년(성종 1) 인산부원군에 봉해졌으며, 다음해 성종의 왕권에 위협적이었던 구성군을 몰아낸 공으로 좌리공신 1등에 책록되었다.

주량이 엄청나 세조가 경음당이란 호를 내릴 정도였으며, 권세를 휘둘러 축재를 하고 가노들을 동원하여 사람을 죽이는 등 전횡이 심했으나 세조의 신임이 두터워 처벌받지 않았다. 시호는 위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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