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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88(고종 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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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60 |
국적 | 북한 |
요약 일제강점기의 사회주의자, 북한의 정치가.
일명 한산·일강·일광·소앙·진덕삼.
1924년 창간된 〈시대일보〉 기자로 재직중 김재봉(金在鳳) 등의 코르뷰로[高麗局] 국내부 조직과 연결되어 〈시대일보〉 야체이카 책임자로 활동했다.
1925년 결성된 제1차 조선공산당에 입당했고, 그해 12월 당 간부들이 검거되자 강달영(姜達永)을 책임비서로 하는 2차 당을 결성, 5인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1926년 6·10만세 시위를 준비하던 중 선전문건 제작자들이 검거되어 당조직이 와해되기 시작하자 상하이[上海]로 망명하여 그해 9월 중국공산당에 입당했다. 이후 중국공산당 상하이 한인지부 및 조선공산당 상하이 야체이카의 책임비서로 한중연합 항일운동을 전개했다. 1932년 11월 상하이에서 조봉암(曺奉岩)과 함께 일본경찰에게 체포되어 평안북도 도경으로 압송된 뒤 징역 6년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8·15해방 직후 여운형 등이 주도한 인민공화국 중앙인민위원회에 참여하여 좌우익 간의 연합전선을 모색하는 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연합전선의 결성이 실패하자 1946년 2월 좌파 중심의 민주주의민족전선에 참여, 부의장에 선출되었다. 그해 11월 결성된 남조선노동당의 중앙위원에 선출되었으나 다음해 월북하여 1948년 8월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이 되었다. 6·25전쟁이 끝난 후 남로당 출신의 당관료·정치인들이 상당수 숙청되는 가운데서도 1957년 8월 최고인민회의 제2기 대의원 및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했다.
1959년 6월부터 죽을 때까지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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