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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조 야스토키

다른 표기 언어 Hojo Yasutoki , 北條泰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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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183년, 일본 가마쿠라(鎌倉)
사망 1242년 7월 14일, 가마쿠라
국적 일본

요약 일본의 무사.

가마쿠라 바쿠후[鎌倉幕府:1192~1333]의 싯켄[執權:섭정] 행정 체계를 혁신해 가마쿠라 바쿠후를 1868년까지 일본에서 가장 중요한 권력체로 제도화하는 데 기여했으며, 거의 1세기 동안 호조 가문이 일본을 지배하는 기초를 탄탄하게 했다.

가마쿠라 바쿠후는 1185년 미나모토 요리토모[源賴朝]에 의해 창건되었으나, 1199년 요리토모가 죽자 야스토키의 할아버지 도키마사[時政]와 아버지 요시토키[義時]는 섭정권을 장악하고 권력을 바쿠후로부터 자신의 가문으로 이양시켰다. 1221년 요리토모에 의해 정부의 상징적인 지위만 허용된 덴노는 호조 가문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켰다. 야스토키는 쇼군[將軍] 군대의 사령관이 되어 반란을 재빨리 진압하고 일본 왕실에 대한 호조 가문의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해 교토[京都]의 왕궁 근처에 군사 본부를 구축했다. 가마쿠라 바쿠후의 영향력은 왕실 귀족들의 영지를 몰수하여 그것들을 호조 가문의 가신들에게 나누어줌으로써 더욱 강화되었다.

1224년 요시토키가 죽자 섭정직은 야스토키에게 계승되었다. 개인적인 권력 강화를 유보하고, 그는 효율적인 통치를 확보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내는 현명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그는 숙부를 렌쇼[連署]에 임명함으로써 2명의 호조 가문 사람이 권력을 나누어 갖는 방식의 선례를 만들었다. 1225년에는 지도적인 무사들과 행정관으로 구성된 고문조직인 효조슈[評定衆]를 설치함으로써 책임공유제를 더욱 확대했다.

또한 1225년 승려 무사들이 일으킨 반란을 강력하게 진압함으로써 자신의 권위를 확립했는데, 이들 승려 무사들은 군사적인 지배권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권위를 주장했기 때문에 수세기 동안 일본정부를 괴롭혀왔었다. 1232년 야스토키는 조에이시키모쿠[貞永式目]를 제정했다. 이 법전은 여러 관리들의 기능을 규정하고 상속과 승계에 대한 조항을 설치했으며, 새로운 토지 제도를 확립하고 공정한 재판을 보장하기 위한 기준들을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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