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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살라 왕조

다른 표기 언어 Hoysala dynasty

요약 1006경~1346년경 남부 데칸을 지배하고 한동안 코베리 강 유역을 통치한 가문.

초기의 왕들은 도라사무드라(지금의 할레비드) 북서쪽 산악 지방 출신이다. 도라사무드라는 1060년 그들의 수도가 되었다. 카나라어를 사용하는 강인한 산악민들을 거느리고 그들은 강가바디(마이소르 주)를 비롯하여 툰가바드라 강 건너 다르와르와 라이추르 쪽의 비옥한 토지를 점차 흡수했다. 칼리아니의 찰루키아 왕조의 제국주의적 사업들은 호이살라 통치자인 비나야디티아(1047~98 재위)와 그의 손자 비슈누바르다나(1110~41 재위)가 봉건적 장군으로서 광범위한 경험을 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비슈누바르다나는 한갈의 거친 카담바 가문으로부터 많은 영토를 탈취했으나 그의 나약한 아들 나라싱하 1세가 이것을 모두 잃었다. 그러나 고원으로부터 촐라왕조를 추방하는 일은 비슈누바르다나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촐라 왕조는 비슈누바르다나의 손자 발랄라 2세(1173~1220 재위)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는 1189~1211년 말프라바 강과 크리슈나 강 건너 지역에서 찰루키야 왕조로부터 빼앗은 북쪽 영토가 데바기리의 야다바 왕조의 압력으로 인해 줄어들었기 때문에 요청을 받아들였다. 호이살라 왕조는 마이소르 북쪽까지 영역을 넓히고 야바다 왕조를 패배시켜 남부 인도의 지배적 세력이 되었다.

촐라 왕조는 발랄라 2세의 손자 소메슈바라(1235경~54 재위)를 코베리 강변에 있는 공국에서 살게 했고 팡디아 황제는 그의 아들 라마나타(1254~95 재위)가 그곳에 남아 있는 것을 허용했다. 그러나 그가 쫓겨날 때 그는 그의 형 나라싱하 3세로부터 고원왕국을 탈취하기 위한 분쟁을 일으켜 호이살라의 자원을 고갈시켰다.

발랄라 3세(1292~1342 재위)는 팡디아에 대항해 델리의 술탄을 도왔는데, 그의 쓸데없는 야망에 의해 왕조의 몰락을 초래했다. 비자야나가르 왕조가 호이살라 왕조를 계승했다. 호이살라 건축과 조각은 화려하고 정교한 것이 특징이며 할레비드·벨루르·솜나트푸르에 대표적인 작품이 남아 있다. 이 가문은 카나라 문학과 산스크리트 문학을 후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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