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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 로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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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227. 3. 18, 로마 |
국적 | 바티칸시티 |
요약
교황(1216~27 재위).
본명은 Cencio Savelli.
교황청 역사상 손꼽히는 행정가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평가된다. 로마 귀족 출신으로 1188년 교황청 회계원장이 되었고, 교황 인노첸시오 3세에게 사제급 추기경으로 임명되었으며, 1216년 7월 18일 그를 계승하여 교황이 되었다. 전임교황의 정책들을 발전시켜 나갔는데, 그 가운데서도 특히 교회개혁과 이슬람교도로부터 성지(聖地)를 회복하는 일에 힘썼다.
제4차 라테란 공의회(1215)가 이미 승인한 예루살렘 왕국 회복을 위한 인노첸시오의 십자군 원정 계획을 즉시 실행에 옮겼다.
과거에 호노리오의 제자였던 시칠리아의 왕 페데리코 2세가 십자군을 이끌 예정이었으나, 페데리코는 시칠리아를 놓고 교황과 황제가 벌이던 복잡한 분쟁 때문에 서약을 회피했다. 왕은 호노리오가 시칠리아를 교황청의 지배 아래에 두려던 인노첸시오의 야망을 관철하려는 것에 반대했다.
2번이나 독일 왕으로 즉위하고(1212, 1215), 9세 된 아들 시칠리아 왕 엔리코 7세를 로마 왕으로 선출한 뒤 호노리오에게 재가를 받은(1220) 페데리코는 이탈리아 전역을 제국의 지배하에 두려는 자신의 궁극적인 계획을 진전시켰고 반란을 일으킨 로마인들과 호노리오를 화해시켰다. 호노리오는 의혹을 품기는 했으나 1220년 11월 22일 로마에서 페데리코에게 황제 면류관을 씌워주었으며, 마침내 신성 로마 제국과 시칠리아를 통합하도록 허락했다.
페데리코가 2번이나 십자군원정을 미루자, 1225년 호노리오는 1227년 8월까지 원정길에 오르지 않을 경우 파문하겠다고 위협했지만 십자군원정은 호노리오가 죽은 뒤에도 시작되지 않았다.
호노리오는 페데리코와 갈등을 겪는 동안 가톨릭 국가들의 분쟁을 능숙하게 가라앉혔다. 1218년 스페인에 있는 무어족에 대해 십자군을 일으켰고, 이곳에서도 서로 반목하던 두 왕 카스티야의 성 페르난도 3세와 레온의 알폰소 9세 사이에 평화를 유지시켰다. 1223년 잉글랜드에서 존 왕이 죽은 뒤 귀족전쟁이 일어났으나, 존의 9세된 아들이자 교황의 봉신 헨리 3세에 맞서 루이 공작(뒤의 루이 8세)을 지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파문하겠다고 위협함으로써 전쟁을 중단시켰다.
1225년 영토분쟁에서 슈베린의 백작 하인리히에게 패배해 감금되어 있던 덴마크 왕 발데마르 2세를 석방하게 했다. 1226년 루이 8세에게 프랑스 남부에서 일어난 그리스도교 이단 종파인 알비파에 대해 인노첸시오가 일으켜놓은 십자군원정을 지휘하라고 명령했다. 호노리오 재위 때 도미니코 수도회(1216), 프란치스코 수도회(1223), 카르멜 수도회(1226)가 새로 승인받았다. 그의 법령 모음인 〈제5편 Compilatio quinta〉은 교회법에 관한 최초의 공식적인 책으로 인정받는다. 그는 또한 교황 첼레스티노 3세와 교황 성 그레고리오 7세의 전기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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