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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920년대 중반에 농촌 협동조합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조직된 농민운동단체.
일본 유학생 전진한(錢鎭漢)·함상훈 등이 당시 발포된 조선산업조합법에 자극을 받아 농촌에서 산업조합사상의 보급, 자주적 정신의 선전, 민족적 단결의 의식을 촉진시키기 위해 1926년 6월에 설립했다. 설립목적으로는 도쿄[東京]에서 중간이윤의 철폐, 고리대의 구축, 경제적 단결, 자주적 훈련 등을 표방했다.
간부로는 서무부위원에 김원석(金源碩)·정헌태(鄭憲台)·유영복(劉永福), 재무부위원에 유원우(柳元祐)·전진한·김민직(金敏稷), 조사부위원에 권오익·김성숙(金成淑)·이상백(李相伯), 조직선전부에 임태호(林泰虎)·전도명(全道明)·신양규(申良奎), 편집부위원에 함상훈·이선근(李宣根)·진헌식(秦憲植) 등이 있었다.
협동조합운동사는 '① 우리는 대중의 경제적 단결을 공고히 하여 자주적 훈련을 기한다, ② 우리는 이상의 목적을 관철하기 위하여 대중 본위의 자주적 조합을 조직하고 이것을 지도한다'는 2대 강령을 내세우고, 기관지로 〈조선경제〉를 발간했다. 또한 조선인단체협의회 및 신간회동경지회 등 재일본 한국인단체들과 긴밀한 연락을 가지기도 했다. 이들은 하기방학을 이용하여 경상북도 일대를 순회 강연하며, 협동조합 조직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그결과 1927년 1월 함창을 시작으로 상주·청리·군모·안동·김천·군위 등지에 협동조합이 설립되었다. 같은 해 11월 〈협동조합운동의 실제〉라는 책자를 발간하여 전국에 배포했으며, 1928년 4월 1일 도쿄에 있던 본부를 서울로 옮기고, 충청도·경상도 일대에서 활발한 조직활동을 전개했다.
1928년 11월 조합수 22개, 조합원수 약 5,000명, 자본금 4만 5,000여 원에 달했다. 그러나 경영난·자금난과 함께 1930년대초 관제농촌운동인 농촌진흥운동이 실시되고 일제의 탄압이 본격화면서 1933년경에 해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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