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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85, 함북 명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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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51. 8 |
국적 | 한국 |
요약 변호사, 독립운동가, 북한 정치관료.
아호는 긍인(兢人). 한성중학교를 거쳐 보성전문학교를 마치고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學] 법과를 졸업한 이후 변호사가 되어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를 비롯한 한인들의 변호에 앞장섰다. 특히 3·1운동 당시 이 운동의 대표자 33명에 대한 공판정(公判庭)에서 불기소 수리(不起訴受理)를 제출해 일대 파문을 일으킨 사건은 유명한 일화로 전해지고 있다.
1927년 2월 신간회가 조직되자 중앙집행위원회 위원장으로 피선되어 민족단일당(民族單一黨) 결성과 항일투쟁에 앞장섰다. 1929년 11월 광주항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이를 계기로 일대 민중운동을 전개하려다가 사전에 발각되어 투옥을 당하는 동시에 변호사 자격도 박탈당했다. 출감 후 딸 정숙과 함께 세계일주를 했고, 귀국 후 보성전문학교 교장으로 취임, 활동했다. 8·15해방이 되자 조선건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임되었으며, 1946년 2월 좌익세력의 결집체인 민주주의 민족전선이 결성되자 수석의장에 선출되었고, 같은 해 11월 남조선노동당이 창당되자 초대 위원장직을 맡았다. 1948년 8월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 같은 해 9월 최고인민회의 의장 및 김일성종합대학 총장, 1949년 6월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의장 등을 지내다가 1951년 8월 병으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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