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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미니누스

다른 표기 언어 Titus Quinctius Flamininus
요약 테이블
출생 BC 227년
사망 BC 174년
국적 로마

요약 로마의 장군·정치가.

능란한 외교를 펼쳐 그리스에 로마의 보호령을 설치했다. 제2차 포에니 전쟁(BC 218~201) 때는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아래에서 군사호민관을 지냈고(BC 208) 타렌툼에서는 프로프라이토르 엑스트라 오르디넴을 지냈다(BC 205~204). BC 198년 콘술(집정관)이 되어 마케도니아 왕 필리포스와 로마 전쟁(제2차 마케도니아 전쟁, BC 200~196) 때 그리스의 지지를 얻기 위해 힘썼다.

그리스에 도착한 그는 미래의 평화를 위해서는 필리포스의 세력을 꺾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를 완전히 패배시켜야만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아카이아 동맹의 지원을 확보하고 로크리스에 있는 니케아에서 필리포스와 만나 평화조약 체결을 위한 협상에 들어갔다. 이 조약의 여러 조항들을 로마 원로원에 제출했으나 회담은 깨졌고 플라미니누스는 마케도니아와 싸워 BC 197년 키노스케팔라이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그뒤 플라미니누스가 제안하고 원로원이 채택한 평화조약에 의해 필리포스는 자신의 왕위와 마케도니아 본토만을 보유하고 나머지 영토는 포기해야만 했다.

BC 196년 코린트에서 이스트미아 경기대회가 열렸을 때 플라미니누스는 유럽과 아시아의 모든 그리스인들에게 자유를 준다고 선포하면서 그리스인들은 그들 자신의 법률로 통치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일로 그는 여러 그리스 도시에서 크게 환영을 받고 구원자라는 별칭과 함께 신으로서 경배를 받았다. BC 194년 로마 군대는 스파르타 참주 나비스의 야망을 꺾은 뒤에 그리스에서 철수했다.

BC 193년 플라미니누스는 소아시아의 자치 그리스 도시국가들에 대한 로마의 권리를 주장했다. 그는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3세에 맞서 그리스 도시들과의 연합을 시도하는 한편 아이톨리아 동맹의 친셀레우코스 정책에 대항하려 했다. 아이톨리아 동맹이 안티오코스에게 도움을 청하자 플라미니누스는 아카이아 동맹을 설득해 안티오코스와 아이톨리아 동맹 양쪽에 전쟁을 선포하도록 했다. 안티오코스가 테르모필라이에서 로마군에게 패한(BC 191) 뒤 플라미니누스는 그리스에 다시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BC 189년에는 켄소르(감찰관)가 되었고 BC 183년에는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의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 비티니아의 왕 프루시아스에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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