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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정신분석이론은 억압된 사고·감정·기억이 저장되는 무의식의 존재를 가정한다. 프로이트는 자유연상법을 통해 무의식 속의 내용들을 밝히려고 했다. 프로이트는 성적 발달 단계를 구강기·항문기·남근기·생식기로 구분했다. 갓 태어난 아기는 엄마의 젖을 먹으면서 입의 욕구를 충족시킨다. 생후 1년 후 시작되는 항문기는 배변훈련에 의해 촉진된다. 4~6세까지의 남근기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해소되어야 극복되며, 생식기에는 재생산에 유용한 열정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사랑의 대상을 선호하게 된다. 또한 프로이트는 인간성격의 구성요소를 이드·자아·초자아라고 했다. 이드는 유아기의 원시적인 충동으로 쾌락을 얻고자 하는 욕망에 의해 지배된다. 자아가 성장하면 현실원리를 따르며, 초자아는 사회의 도덕규범을 내면화하면서 발달된다.
프로이트는 10년 후인 1890년대 초 자유연상법을 개발하고 나서 비로소 브로이어의 경험이 함축하는 의미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프로이트는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방법을 브로이어와의 공저인 〈히스테리에 대한 연구 Studien über Hysterie〉(1895)에 발표했다. 이 방법을 통해 프로이트는 환자에게 마음에 연상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무작위적으로 표현하도록 함으로써, 그가 무의식이라고 불렀던 정신의 한 영역으로부터 나오는 내용들을 밝히려고 했다.
환자들이 자유연상 도중 갑자기 말을 멈춘다든가 더듬는다든가 하는 등의 어려움을 보일 때, 그는 이것이 환자의 표현에 대한 갈등과 방어를 암시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를 '저항'이라고 불렀는데, 이것은 숨겨진 충돌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분석되어야할 것이었다(억압). 샤르코나 브로이어와 달리 프로이트는 여성 히스테리 환자에 대한 임상적인 경험을 토대로 저항의 가장 두드러진 내용이 본질적으로 성적인 것이라고 결론지었고 더 나아가 신경증의 여러 증상들이 성적 감정 또는 충동과 이에 대한 정신적 방어 사이의 갈등에 기인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부지불식간에 이루어지는 욕망과 방어 사이의 타협 형성의 결과로 생각되었던 신경증 증상들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자유연상을 통해 갈등을 의식 세계로 끌어내고 그것의 함축된 의미를 밝혀내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프로이트의 히스테리에 관한 연구는 여성의 성과 그것이 신경증으로 발현될 잠재성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정신분석학(1896년 프로이트가 명명)이 보편적인 것이 되기 위해서는 정상적인 상태에 있는 남성의 정신도 연구되어야 했다. 이를 위해 프로이트는 그가 가장 잘 아는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시켜 자신을 분석하기로 했다.
이는 그의 생애에서 괴로웠던 한 사건인데 1896년 10월 아버지 야코브 프로이트의 죽음을 통해 가능하게 되었다. 오랫동안 억눌러왔던 감정, 즉 그가 어린시절에 겪었던 가족 내에서의 경험과 애정에 관한 감정이 분출되었던 것이다. 1897년 7월초에 프로이트는 수천 년 동안 이루어졌던 방법인 꿈의 분석을 통해 본격적으로 그 감정들의 의미를 드러내려는 시도를 시작했다. 그가 꿈 분석의 전통에 기여한 것은 실로 혁신적인 것이었다. 그는 꿈의 분석이 '무의식에 대한 지식을 얻는 지름길'이라고 주장하면서, 꿈이 왜 생기며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대하여 매우 상세하게 설명했다.
많은 주석가들이 프로이트의 걸작으로 평가하는 〈꿈의 해석 Die Traumdeutung〉(1899)에서 그는 자신이 발견한 것들을 제시했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꿈은 소원실현(wish fulfillment)이 위장되어 표현된 것이며 신경증의 증상들과 마찬가지로 정신의 내부에서 욕망과 이를 실현하지 못하게 하는 금지 사이의 충돌이 타협한 결과인 것이다. 〈꿈의 해석〉은 프로이트가 '꿈 작업'(dream work)이라고 부른 꿈의 정체를 드러낼 수 있는 도구를 제공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사람들이 기억하여 이야기하는 꿈의 현상적인 내용은 잠복된 의미를 베일로 가리고 있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꿈은 매일 겪는 즉각적인 경험의 잔재가 가장 깊고도 유아적인 욕망과 혼합되어 있기 때문에 논리적인 정합성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궁극적으로는 해석이 가능하다. 꿈의 해석은 꿈의 방향과 반대되는 과정이며, 꿈을 의식적으로 설명하는 수준에서 의식의 바로 전 단계를 거쳐 무의식 자체로까지 옮겨가는 과정이다.
프로이트는 〈일상생활의 정신병리 Zur Psychopathologie des Alltagslebens〉(1904)·〈농담과 무의식과의 관계 Der Witz und seine Beziehung zum Unbewussten〉(1905)에 이어 〈성 이론에 대한 3가지 기고 Drei Abhandlungen zur Sexualtheorie〉(1905)를 출간했는데, 이 저서는 그를 성과학(性科學)의 선구자로 확립시켰다.
여기서 그는 성욕의 개념을 관습적인 영역을 넘어서 어린시절부터 계속되는 성애적인 충동들을 다 포함하는 것으로 확장시켰다. 인생의 초기에 시작되며, 만족시킬 것을 요구하고, 표현이 매우 다양하며 쉽게 잘못 발달될 수 있기 때문에, 그는 성욕을 인간 행동의 많은 부분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라고 결론내렸다.
프로이트는 신체에서 성적 욕구를 만족시키는 부위가 점진적으로 다른 부위에 의해 대체된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 성적 충동의 발달과정을 설명했다(리비도). 원래 다형태인 인간의 성욕은 태어나자마자 어머니의 젖을 빠는 것을 통해 구강으로 충족시키려고 하며, 이후에는 다른 대체물로 옮겨진다.
구강기가 지나고 2세 때에는 어린이의 성욕의 초점이 항문으로 옮겨지는데, 이는 배변훈련에 의해 더욱 촉진된다. 항문기 동안에 배변을 통한 어린이의 쾌락은 주위의 자기통제 요구와 대립된다. 4~6세까지 지속되는 3번째 기간은 남근기인데, 그는 남성의 성욕을 발달의 준거로 보았고 이 시기의 주된 관심이 거세불안(去勢不安)이라고 주장했다.
때문에 이 시기에 대한 그의 분석은 많은 반대를 불러일으켰다. 그에 의하면, 남근기는 거세공포를 동반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남자 어린이가 어머니와 자고 싶어하는 욕망과 이를 충족시키는 데 방해가 되는 아버지를 제거하고자 하는 욕구)가 해소되어야 성공적으로 극복될 수 있다.
소년이 마침내 어머니에 대한 성적 욕구를 억제하고 소위 잠복기로 들어가며, 아버지의 꾸짖는 금지를 내면화하여 정신의 한 부분인 초자아 또는 양심을 구성할 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해소될 수 있다. 그는 정신구조 내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중요하다고 항상 주장했으며, 이의 성공적인 해소가 잠복기를 거쳐 성숙된 성욕의 단계인 생식기로 변화하는 데 선행조건이라고 생각했다.
생식기에서는 자신의 성과 반대되는 부모에 대한 욕구는 없어지고 재생산에 유용한 열정을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좀더 적당한 사랑의 대상을 선호하게 된다.
만일 성적 발달의 여러 단계를 적절히 통과하는 데 실패하면, 어느 특정한 시기에 성적 대상이나 목표의 고착이 일어나 정신적으로 상처를 입게 되거나 강력한 성적 충동이 봉쇄된다. 이 고착은 나중에 나이가 든 다음에 성도착(性倒錯)의 형태로 표현되는데, 만일 정신의 어떤 부분이 노골적인 표현을 금지하면 충동이 억제되고 검열을 받기 때문에 음성적인 도착인 신경증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감정의 갈등을 신체 증상으로 전환시키는 히스테리의 신경증 이외에도 그는 강박관념장애·편집증·나르시시즘 등의 다른 전형적인 신경증의 원인에 대해 복잡하게 설명했다. 그가 정신신경증이라고 한 이러한 신경증들은 아동기의 갈등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므로 현실의 문제 때문에 발생하는 침울증·신경쇠약증·불안신경증 등의 신경증과는 반대되는 것이다(도착증, 정신신경증).
당시 빈의 많은 사람들은 그의 이론을 불쾌하게 생각했으나, 1900년대초에 그의 이론에 대한 지지자들의 모임이 전세계적으로 열리기 시작했다.
1902년 그의 대기실에서 미래의 정신분석학 운동의 지도자가 될 많은 사람들이 참석한 가운데 '수요심리학회'(Psychological Wednesday Circle)가 열리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A. 아들러와 W. 슈테켈이 종종 S. 페렌치, C. G. 융, O. 랑크, E. 존스, M. 아이팅곤, A. A. 브릴 등과 같이 참석하기도 했다. 이 단체는 1908년에 빈 정신분석학회(Vienna Psychoanalytic Society)로 개칭했고 첫번째 국제학회를 잘츠부르크에서 열었으며, 같은 해에 베를린에 최초의 자매학회가 생겼다. 1909년 그는 융·페렌치 등과 함께 매사추세츠 우스터에 있는 클락대학교로 역사적으로 유명한 여행을 했다.
그곳에서 그가 행한 연설은 곧 〈정신분석학에 대하여 Über Psychoanalyse〉(1910)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는데, 이는 그가 일반 청중들을 위해 쓴 여러 개설서들 중 최초의 것이었다. 〈도라〉(1905)·〈작은 한스〉(1909)·〈쥐사나이〉(1909)·〈정신병자 슈레베 박사〉(1911)·〈늑대사나이〉(1918) 등으로 알려진 가장 유명한 일련의 생생한 증례 연구를 포함하고 있어서, 이 책은 그의 이론을 더 많은 대중에게 알려지게 했다.
치료에서 전이의 힘과 오이디푸스적인 갈등의 보편성을 강조한것에서 예견되듯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운동의 초기 역사는 의견의 불일치, 배신, 변절, 제명 등으로 얼룩진 것이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으로 1911년 아들러, 1912년 슈테켈, 1913년 융과의 분립이 일어났고, 곧이어 1920년대에는 페렌치, 랑크, 빌헬름 라이히와 결별하게 되었다.
이러한 계속되는 분열에서 보이는 것처럼 그가 죽은 뒤 그에 대한 연구자들은 그의 정신분석학 운동이 과학자 사회보다는 분파주의적인 교회를 닮았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1920년대에 발간된 2권의 책 〈쾌락의 원리를 넘어서 Jenseits des Lustprinzips〉(1920)·〈자아와 이드 Das Ich und das Es〉(1923)에서 그는 초기에 정신을 무의식·전의식(preconscious)·의식으로 구분하던 것과 이후 자신이 이드(id)·자아(ego)·초자아(superego)로 범주화한 것 사이의 관계를 밝히려고 했다.
그에 의하면 이드는 유아기 때의 만족을 추구하는 가장 원시적인 충동으로서 흥분의 방출과 에너지의 집중을 통해 쾌락을 얻고자 하는 욕망에 의해 지배되는 충동이며, 본능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1차적 과정에 의해 지배된다. 그리고 2차적 과정의 결과로 자아가 성장하는데, 이는 현실원리를 따르며 이드에 의해 지배되는 쾌락원리와 구별된다.
여기서 자기보존을 위해 욕망의 만족을 유보해야 할 필요를 점차 배우게 되면서 충족되지 못한 욕망으로 인해 갈등이 생기는데, 자아는 이러한 갈등을 처리하기 위해 방어 메커니즘을 발달시킨다. 방어 메커니즘 중 가장 기본적인 것은 억제이지만 그외에도 반동형성·분리·취소·부정·전이·합리화 등이 이에 속한다.
3번째 구성요소는 초자아로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해소되는 동안에 부모의 명령을 동일화함으로써 사회의 도덕적 규범을 내면화하는 것으로부터 발달된다. 초자아는 부분적으로만 의식적이며 이드로부터 자아로 향하는 특정한 공격적인 요소를 빌려와서 죄책감을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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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론 – 다음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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