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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민란

다른 표기 언어 咸陽民亂

요약 1862년(철종 13) 경상도 함양에서 일어난 농민봉기.

임술년에 삼남지방에서 발생한 일련의 농민봉기 중 하나로, 대규모로 발생한 진주농민항쟁의 영향을 받아 발생했다.

함양은 논이 많아 쌀의 소출이 상당했는데, 그만큼 지배층의 수탈도 가혹했다. 함양농민들은 결가가 높이 책정된 것에 불만을 품고, 1862년 3월 16일 군수 오경선이 상경하여 공권력에 공백이 생긴 틈을 이용해 봉기했다. 나무를 베어 생계를 이어가는 초군 박만순·허형(許炯)·우서구 등이 주동하여, 전세목가를 높게 책정한 향리들을 타도할 것을 주장했다. 이들은 관가로 몰려가 닥치는 대로 부수며, 이서배의 집과 평소 원망을 사던 사람들의 집에 불을 질렀다.

3월 21일 농민들은 6일간의 싸움을 일단 끝내고 각자 흩어져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후에도 항쟁의 분위기는 가라앉지 않아 농민들은 읍권을 장악하고자 했으며 구폐책도 마련했다. 그러나 농민군들은 결국 병영과 읍의 무력으로 진압되었다. 6월 12일 암행어사 이인명(李寅命)이 진주에 도착한 후 주모자 세 사람은 효수당했으며, 장응팔·강치문 등은 정배당하고, 양재규·임삼이 등은 곤장을 맞고 풀려났다. 한편 백성들의 표적이 되었던 전 군수 오경선은 장(杖) 100대를 맞고 고신을 삭탈당했다.

함양의 농민봉기가 진압된 후 농민항쟁은 거창을 거쳐 성주·선산·개령 등지로 확산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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