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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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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미상 |
국적 | 신라, 한국 |
요약 신라의 장군.
아들은 화랑 관창이다. 660년(태종무열왕 7) 나당 연합군의 백제 정벌 때 신라는 5만명의 병력으로 출전했다.
그해 7월 김유신(金庾信)이 이끄는 신라군이 황산에 이르렀으나 백제의 계백이 지휘하는 5,000명의 결사대가 강력히 항전하여 나아갈 수가 없었다. 이에 장군 김흠순(金欽純)이 그 아들 반굴을 전장에 내보내 전사하자, 품일도 관창에게 권해 단창으로 적진에 뛰어들게 했다. 관창은 사로잡혔다가 돌아왔으나 다시 적진에 뛰어들어 마침내 목이 베인 채 돌려보내졌다. 품일은 그 머리를 쳐들고 소매로 피를 씻으며 "우리 아이의 면목이 살아 있을 때와 같다. 나라일에 용감히 죽었으니 다행이다"라고 했다. 그러자 신라군은 모두 비분강개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진격하여 백제군을 물리칠 수 있었다.
661년 사비성의 당군이 백제의 저항군에게 포위당하자 대당장군이 되어 구원군을 이끌고 출전했으나 두량윤성 남쪽에서 진을 치려다가 성 밖으로 나온 백제군의 습격을 받고 패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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