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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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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642(선덕왕 11) |
국적 | 신라, 한국 |
요약 김춘추(金春秋)의 사위.
대야성(지금의 경남 합천) 도독으로 부임한 뒤 부하인 검일의 아내를 빼앗아 원한을 샀다. 642년 8월 백제 장군 윤충이 군사를 이끌고와 대야성을 포위했다. 그때 검일이 백제군과 내응하여 창고에 불을 지르니 민심이 흉흉해져 성을 지킬 자신감을 잃었다.
보좌관인 서천이 항복할 것을 권유하여 성 밖으로 나가려 했는데 이때 또다른 보좌관인 죽죽이 만류했다. 품석이 그 말을 듣지 않고 성문을 열어 군사들을 성 밖으로 나가게 하자 백제의 복병은 이들을 살해했다. 이 소식을 들은 그는 처자를 죽이고 자살했다. 그뒤 죽죽이 끝까지 싸웠으나 역부족으로 성은 함락당했다. 윤충은 그의 목을 베어 사비성에 보내고 남녀 1,000명을 사로잡아 갔다. 품석 내외의 유골은 647년(진덕왕 1) 김유신(金庾信)이 사로잡은 백제 장군 8명과 교환되어 비로소 신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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