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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06년 2월 7일, 중국 베이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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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67년 10월 17일, 베이징 |
국적 | 청(淸), 중국 |
요약
1908년 11월에 큰아버지인 광서제가 죽자, 3세의 나이로 제위에 올라 아버지 순친왕 재풍의 섭정을 받으며 3년간 황제로 있었다.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면서 이듬해인 1912년 2월 12일 제위에서 물러났다. 자신의 호칭으로 헨리라고 지어 서구에서는 헨리 푸이로 알려졌다.
그의 퇴위는 267년에 걸친 만주족의 중국 지배와 2,000년간에 걸친 황제 지배체제의 종식을 가져왔다. 그는 베이징에 있는 궁전에서 계속 살도록 허용되었으나 1924년 몰래 베이징을 떠나 톈진에 있는 일본인 조계로 거주지를 옮겼다. 1932년 3월 만주국의 집정관이 되었고, 1934년 만주국 황제로 추대되었다. 1945년 8월 소련에 포로로 억류되었다가 1950년 전범 재판을 받기 위해 중국으로 송환되었다. 1967년 베이징에서 신장암과 심장병으로 사망했다.
청제 때의 연호는 선통제. 1908년 11월 14일에 큰아버지인 광서제가 죽자, 3세의 나이로 제위에 올라 아버지 순친왕 재풍(載灃)의 섭정을 받으며 3년간 황제로 있었다.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면서 이듬해인 1912년 2월 12일 제위에서 물러나야만 했다.
푸이가 퇴위함으로써 267년에 걸친 만주족의 중국 지배와 2,000년간에 걸친 황제 지배체제가 끝나게 되었다. 그는 베이징에 있는 궁전에서 계속 살도록 허용되었다. 그는 자신의 호칭으로 헨리라는 이름을 택했고, 이후 서구에서는 헨리 푸이로 알려졌다. 1924년 푸이는 몰래 베이징을 떠나 톈진[天津]에 있는 일본인 조계(租界)로 거주지를 옮겼다. 1932년 3월 9일 만주국의 집정관(執政官)이 되었고, 1934년 만주국 황제로 추대되어 연호를 강덕(康德)이라고 정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인 1945년 8월 소련에 포로로 억류되었다가 1950년 전범 재판을 받기 위해 중국으로 송환되었으며, 1959년 특사로 풀려나 다시 베이징으로 갔다. 베이징에서 식물원의 기계수리상점에서 일했다. 1964~65년에 영어로 된 푸이의 자서전 〈황제에서 시민으로 From Emperor to Citizen〉가 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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