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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아티에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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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프랑스와 잉글랜드 사이에 벌어진 백년전쟁의 첫번째 국면이 끝날 무렵, 프랑스의 국왕 장 2세가 참패를 당했던 전투(1356. 9. 19).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3세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에드워드 흑세자는 존 챈더스 경(卿) 휘하의 잉글랜드군과 카프탈 드 부슈 휘하의 가스코뉴군 모두를 합쳐 7,000명이 채 안 되는 병력을 이끌고 보르도에서 중부 프랑스까지 기습공격을 감행했지만, 우세한 전력을 지녔던 것으로 추정되는 장 2세의 추격을 받아 루아르 강 하류 계곡에서 방향을 서쪽과 남쪽으로 바꾸었다.

그러다가 1356년 9월 17일 푸아티에 동쪽에서 접전이 벌어졌다. 그러나 일요일인 9월 18일 하루 동안 휴전한 덕분에 잉글랜드군은 푸아티에 남쪽 누엘레 근처 모페르튀 강 나루터 일대에 은신처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곳은 미오송 강과 클랭 강의 합류지점으로 주변에 덤불과 늪지가 펼쳐져 있었다. 크레시 전투(1346)의 교훈을 망각하고 프랑스군은 여러 차례 공격을 감행했다.

프랑스의 기사들은 수렁에 빠져 꼼짝 못함으로써 흑세자군 궁수들의 손쉬운 표적이 되었다. 장 2세 자신도 프랑스군의 마지막 돌격을 지휘하다가 포로가 되었다. 석방의 대가로 그는 불리한 내용을 담고는 있으나 완전히 체결되지 않은 상태에 있었던 브레티니 조약과 칼레 조약(1360)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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