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생 | 1873. 8. 4, 프랑스 생에냥 |
---|---|
사망 | 1972. 3. 28, 파리 |
국적 | 프랑스 |
요약 프랑스의 좌파정치가.
노동장관·육군장관·외무장관 등을 역임했으며, 4년 동안 국제연맹에 프랑스측 상임 대표로 있었다.
파리대학교에서 법학학위를 받은 후 변호사업을 시작했고, 생디칼리스트 노동자 협회의 법률자문위원회를 조직했으며, 1898~1902년 피에르 발데크 루소 총리의 개인비서를 지냈다. 1909년 그의 고향인 생에냥에서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었으며, 1911년 노동장관으로 재임했다. 1914년 국회의원직을 잃었지만 제1차 세계대전 후 사회주의자로서 국회에 복귀했다. 그러나 1931년 사회당을 탈당하여 무소속의원들로 구성된 사회공화연합당이라는 신당(新黨)을 구성했다. 그해에 그는 상원의원으로 선출되어 필리프 페탱 원수의 비시프랑스가 들어선 1940년까지 의원으로 재직했다.
폴 봉쿠르는 1932~36년 프랑스의 국제연맹 상임대표로 근무했으며, 1932년에는 에두아르 에리오 총리의 내각에서 육군장관을 역임했고, 1932년 12월부터 1933년 1월 잠시 총리를 지냈으며, 1932년 12월부터 1934년 1월, 1936년 1~6월, 1938년 3월에 각각 외무장관을 지냈다. 1940년 7월 페탱 원수에게 합헌적 권한을 부여하자는 투표에 반대표를 던진 그는 알제에서 독일과 맞서 계속해서 싸울 것을 주장했다. 1944년 제헌의회 의원으로서 프랑스 대표단을 이끌고 샌프란시스코에 가서 프랑스를 대표하여 국제연합(UN)헌장에 조인했다. 그후 그는 1946~48년 상원의원을 지냈다.
그의 저서인 〈경제연방주의 Le Féderalisme économique〉(1900)·〈공무원조합 Les Syndicats de fonctionnaires〉(1906)에는 노동조합주의에 대한 그의 관심이 잘 나타나 있다. 또한 그는 〈예술과 민주주의 Art et démocratie〉(1912)·〈제3공화국에 대한 회고 Entre deux guerres:souvenirs sur la Ⅲe République〉(1946)를 저술했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정치가와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