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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경기도 북동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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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 143,157 (2024) |
면적 | 826.69㎢ |
행정구역 | 1개읍 11개면 2개동 |
사이트 | http://www.pcs21.net/pocheon/main/intro.jsp |
요약 경기도 북동부에 있는 시. 해방 이후 북부지역이 북한지역에 속했다가 한국전쟁 이후 모두 수복되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아파트 단지와 공장이 들어서면서 인구가 증가했다. 농업이 중심 산업이었으나 최근 공장들이 이전해 오면서 공업의 비중이 커졌다. 백운산을 비롯하여 광릉수목원·산정호수 등의 관광지가 인기있다. 면적 826.69㎢, 인구 143,157(2024).
대한민국 경기도 북동부에 있는 시. 강원도 철원군·화천군에 접해 있다. 서울특별시와 강원도 북서부를 연결하는 길목에 있으며, 인접한 가평군과 함께 경기도에서 가장 높은 산악지대를 이루고 있다. 행정구역으로는 소흘읍·군내면·내촌면·가산면·신북면·창수면·영중면·일동면·이동면·영북면·관인면·화현면·선단동·포천동 등 1개읍 11개면 2개 동이 있다(행정동 기준, 법정동 기준은 6개). 시청소재지는 경기도 포천시 중앙로 87이다. 면적 826.69㎢, 인구 143,157(2024).
연혁
지금의 포천시는 옛 포천현과 영평군이 합하여 이루어진 곳이다. 시의 북부는 옛 영평군 지역이고, 남부는 옛 포천현 지역에 해당한다. 옛 포천현은 삼국시대 초기에는 백제의 영역이었으며, 고구려의 남하로 고구려의 마홀현(馬忽縣) 또는 명지성(命旨城, 臂城)이었다. 신라의 삼국통일 후 757년(경덕왕 16)에 견성군(堅城郡)으로 개칭되었다.
고려초에는 다시 포주(抱州)로 개칭했으며, 1018년(현종 9)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양주(楊州)의 속현이 되어 병합되었다. 조선초의 군현제 개편에 의해 1413년(태종 13)에 포천현이 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지방제도 개정으로 1895년에 한성부 포천군, 1896년에 경기도 포천군이 되었다.
1906년 월경지 정리에 의해 양주의 두입지인 산내면과 청송면이 편입되고, 1914년 군면 폐합 때 영평군이 폐지되어 포천에 병합됨으로써 면적이 크게 넓어졌다. 1937년에 서면이 포천면으로 개칭되었다. 1945년 8·15해방으로 38˚선 이북에 속하는 군의 북부가 북한지역에 편입되었다가 치열한 격전이 벌어졌던 6·25전쟁 후 모두 수복되었다.
197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포천면 탑동리가 양주군 동두천읍으로 분리되었다. 1979년에 포천면이 읍으로 승격되고, 1983년에는 연천군에서 관인면이 편입된 대신 청산면이 연천군으로 이관되고, 내촌면 화현출장소가 화현면으로 승격되었다(→ 영평군). 2003년 10월 19일 도농복합시로 승격되면서 포천읍이 포천동과 선단동으로 분리되었다.
인구
전체적으로 인구정체지역이었으나, 1980년대 후반부터 포천동·선단동·소흘면에 들어선 아파트 단지와 신북면·가산면에 입지한 중·소 공장들로 인해 인구가 늘어났다. 1980년대 이후의 인구를 보면 1980년 10만 8,991명, 1985년 10만 8,585명, 1990년 11만 919명, 1995년 13만 1,181명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이후 2000년 14만 8,102명, 2005년 16만 2,455명, 2010년 16만 9,050명을 기록하면서 증가추세가 이어져왔다. 2024년 인구는 14만 3,157명으로 1995년 인구에 비해 30%가 증가했다.
인구증가에 따라 가구수도 1995년 3만 9,781가구였던 것에서 2020년 기준 7만 1,271가구로 2배 가량 증가했다. 반면 가구당 인구는 핵가족화의 영향으로 1995년 3.22명에서 2020년 2.07명으로 감소했다. 읍면동별 인구분포를 살펴보면 소흘읍(4만 3,207명)에 가장 많은 인구가 거주하며, 창수면(2,070명)에 가장 적은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2024).
연혁
지금의 포천시는 옛 포천현과 영평군이 합하여 이루어진 곳이다. 시의 북부는 옛 영평군 지역이고, 남부는 옛 포천현 지역에 해당한다. 옛 포천현은 삼국시대 초기에는 백제의 영역이었으며, 고구려의 남하로 고구려의 마홀현(馬忽縣) 또는 명지성(命旨城:臂城)이었다. 신라의 삼국통일 후 757년(경덕왕 16)에 견성군(堅城郡)으로 개칭, 한주(漢州:廣州)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초에는 다시 포주(抱州)로 개칭했으며, 995년(성종 14)에 단련사를 파견했다가 1005년(목종 8)에 폐지했다. 1018년(현종 9)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양주(楊州)의 속현이 되어 병합되었다가 1172년(명종 2)에 감무가 파견되어 독립했다. 조선초의 군현제 개편에 의해 1413년(태종 13)에 포천현이 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지방제도 개정으로 1895년에 한성부 포천군, 1896년에 경기도 포천군이 되었다. 1906년 월경지 정리에 의해 양주의 두입지인 산내면과 청송면이 편입되고, 1914년 군면 폐합 때 영평군이 폐지되어 포천에 병합됨으로써 면적이 크게 넓어졌다. 이때 면의 폐합도 이루어져 포천군의 서면은 그대로, 청량면(일부)·군내면이 군내면으로, 청량면(일부)·가산면이 가산면으로, 내동면·동촌면이 내촌면으로, 외소면·내소면이 소흘면으로, 외북면·내북면이 신북면으로, 청송면·산내면이 청산면으로 통합되었다. 옛 영평군 지역의 일동면·이동면은 그대로, 읍내면·군내면이 영중면으로, 하리면·남면·서면이 창수면으로, 북면이 영북면으로 통합 또는 개칭되어 포천군에 편입되었다. 1937년에 서면이 포천면으로 개칭되었다. 1945년 8·15해방으로 38˚선 이북에 속하는 군의 북부가 북한지역에 편입되었다가 치열한 격전이 벌어졌던 6·25전쟁 후 모두 수복되었다. 1979년에 포천면이 읍으로 승격되고, 1983년에는 연천군에서 관인면이 편입된 대신 청산면이 연천군으로 이관되고, 내촌면 화현출장소가 화현면으로 승격되었다(→ 영평군). 2003년 10월 19일 도농복합시로 승격되면서 포천읍이 포천동과 선단동으로 분리되었으며, 창수면 일부지역(신흥리, 고소성리 일부)은 군 작전상 입주를 허용하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자연환경
광주산맥의 주맥이 시의 동북에서 남동방향으로 뻗어 있어 남부 중앙에 자리한 포천분지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이 높은 산지로 되어 있다. 경기도 가평군과 강원도 화천군의 경계를 이루는 동부산지에는 백운산(白雲山:904m)·국망봉(國望峰:1,168m)·강씨봉(姜氏峰:830m)·청계산(淸溪山:849m)·원통산(圓通山:567m)·현등산(懸燈山:936m) 등이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솟아 있다. 북부에는 고남산(古南山:644m)·박달봉(朴達峰:800m)·광덕산(廣德山:1,046m)·각흘봉(角屹峰:838m) 등이 솟아 있으며, 천보산맥(天寶山脈)으로도 불리는 서부산지에는 지장봉(地藏峰:877m)·삼형제암(三兄第巖:715m)·향로봉(香爐峰:605m)·종자산(種子山:643m)·종현산(鍾懸山:589m)·국사봉(國師峰:754m)·왕방산(旺方山:737m) 등이 솟아 연천군·동두천시·양주시와 경계를 이룬다. 남부 의정부시·남양주시와의 경계에는 용암산(龍巖山:477m)·운악산(雲岳山:235m)·주금산(鑄錦山:814m)이 솟아 있다. 포천천은 시의 주천으로 남부산지에서 발원하여 군의 중앙부를 북류하고 영중면 양문리에서 영평천과 합류한다. 영평천은 동북단 광덕산에서 발원하여 북부 중앙부를 서류하고 창수면에서 한탄강에 유입된다. 한탄강은 북부를 서류하여 연천군, 강원도 철원군과 경계를 이루며 흐르는데, 일대의 현무암 용암대지를 침식하여 수직절벽과 협곡을 이루었다. 이러한 지형은 군사적 요충지 및 관광지로 이용되고 있다. 이들 하천과 주요지류의 합류지점에는 포천분지를 비롯한 분지와 곡저지가 발달해 있다.
기후는 중부 산간내륙지방에 위치하고 있어 한서의 차가 심한 전형적인 대륙성 기후를 나타낸다. 연평균기온 10.3℃ 내외, 1월평균기온 -3.0℃ 내외, 8월평균기온 22.7℃ 내외다. 연강수량은 1,194.5㎜ 정도로, 광주산맥이 양쯔 강[揚子江]과 화북지방에서 동진해오는 저기압을 가로막아 지형성 강우지역을 이룬다. 산지에는 소나무·잣나무·젓나무·밤나무·참나무 등이 숲을 이루고 있다.
인구
전체적으로 인구정체지역이었으나, 1980년대 후반부터 포천동·선단동·소흘면에 들어선 아파트 단지와 신북면·가산면에 입지한 중·소 공장들로 인해 인구가 늘어났다. 1980년대 이후의 인구를 보면 1980년 10만 8,991명, 1985년 10만 8,585명, 1990년 11만 919명, 1995년 13만 1,181명, 2000년 14만 8,102명, 2002년 15만 4,710명으로, 1995~2002년에는 약 15.2% 증가했다.
65세 이상의 고령자 인구도 함께 늘고 있다. 가구수는 1995년 39,311가구, 2002년 53,997가구로 같은 기간인 1995~2002년에 37.4% 증가했다. 2002년 세대당 인구수는 2.8명이다. 2002년 인구이동은 전입이 3만 959명, 전출이 2만 5,331명으로 전입이 더 많으며, 전입·전출 모두 도내이동이 많다.
2024년 기준 인구는 14만 3,157명이고 가구수는 7만 3,370가구이다. 세대당 인구수는 2명이다.
산업과 교통
농업이 중심 산업이나, 최근 서울에서 이전해오고 있는 공장들로 인해 공업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경지면적은 총 104.54㎢로 논이 41.61㎢, 밭이 62.93㎢로 밭이 논보다 넓다. 농가수는 6,735가구다(2014). 쌀·콩과 각종 채소류가 주요 농산물이며, 배·사과·포도 재배도 활발하다.
축산업으로는 닭·젖소·산양·토끼 등이 많이 사육되고 있다. 포천은 예로부터 소의 사육이 많아 포천우시장이 전국적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현재는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임야(542.82㎢)는 전체면적의 65% 가량을 차지하며, 잣·밤·대추·도토리·은행·표고버섯 등 각종 임산물이 풍부하다. 시내에 있는 총 44개 광산 가운데 2014년 기준 가동 중인 광산은 2개소(금속광 1개소, 비금속광 1개소)가 있다. 특히 영북면에 있는 포천광산은 한국의 대표적인 철광산이었으나 1978년 이후 휴광상태다.
제조업체는 2014년 기준 총 827개소, 종업원수는 2만 643명이며, 기계공업·화학공업·섬유공업·양조공업 등이 주업종이다. 특히 이동면의 양조업은 포천막걸리로 명성이 높으며, 신북면에는 인삼제품제조업체가 밀집해 있다. 신평일반산업단지가 조성되어 53개 업체가 입주해 있으며, 종업원 727명이 종사하고 있다. 포천양문일반산업단지에는 156개 업체에 554명의 종업원이 종사하고 있다(2014). 포천동·소흘읍·내촌면·일동면·이동면·영북면·관인면 등 7개소에 정기시장이 열린다. 그러나 교통망의 발달로 서울을 비롯한 의정부시·동두천시 등을 통한 상업활동이 많아지고 있다.
시의 동부와 서부지역을 북동에서 남서방향으로 각각 통과하면서 나란히 놓여 있는 강원도(북한) 김화-의정부, 서울-철원을 잇는 국도가 핵심 교통로다. 또한 파주-여주를 잇는 국도가 동서를 지나며, 지방도가 시의 각 지역을 연결한다. 이들 도로는 지형의 영향으로 축석령·회암령·광덕현·강씨봉고개 등의 고개를 지난다. 의정부·서울과는 시외 버스가 수시로 운행된다. 도로총길이 520.25km, 도로포장률 80.8%이다(2014).
의정부·서울과는 시외 버스가 수시로 운행된다. 도로총길이 547.5km, 도로포장률 66.5%이다(2006).
유물·유적·관광
국가지정문화재(천연기념물 2, 사적 1), 도지정문화재(유형문화재 4, 기념물 8, 무형문화재 2), 문화재 자료 2점이 있다. 선사시대 유물로 가산면의 포천금현리지석묘(문화재자료 제47호)가 대표적이며, 그밖에 포천영송리선사유적 (기념물 제140호)이 있다. 삼국시대 유적으로는 군내면의 포천구읍리반월산성지(사적 제403호)가 있다.
불교문화재로는 흥룡사·자인사·봉운사·원통사 등이 있다. 유교문화재로는 군내면에 포천향교(문화재자료 제16호), 가산면에 백사 이항복을 모신 화산서원(기념물 제46호), 신북면에 오성 이덕형을 모신 용연서원(유형문화재 제70호)과 채산사(기념물 제30호) 등이 알려져 있다.
그밖에 소흘읍에 사육신의 한 사람인 유응부의 제단인 충목단(기념물 제102호)과 가산면에 이항복선생묘(기념물 제24호), 선단동에 약봉서성선생묘, 철종의 부친인 전계대원군묘, 신북면에 신라말의 석학 최치원의 사당인 청성사(유형문화재 제64호)와 효종의 친필로 된 인평대군치제문비(유형문화재 제75호) 등이 있다.
주요 관광지로는 백운산을 비롯한 동부산지와 광릉임업시험장 내의 광릉수목원, 산정호수를 포함한 한탄강과 영평천 유역의 영평8경(또는 포천8경) 등이 있다. 백운산지구는 맑은 계곡과 빼어난 풍치로 널리 알려져 여름철·가을철에 관광객이 많다. 광릉임업시험장(임업시험장 중부지부)은 소흘읍과 남양주시·의정부시에 걸친 산림지역으로 수목원을 조성·개방하고 국립산림박물관을 갖추고 있어 서울을 비롯한 인근지역 주민들의 주말 관광·휴식처나 산림욕 장소로 인기가 높다.
영평8경은 화적연·와룡암·선유담·금수정·백로주·창옥병·청학동·낙귀정지 등을 일컫는다. 1977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된 산정호수는 각종 숙박시설·위락시설 등을 갖춘 유원지로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와 함께 널리 알려진 명소다. 그밖에도 이 군에는 오염되지 않은 계곡과 우거진 산림, 각종 문화유적지도 적지 않아 앞으로도 가족 및 직장단위의 휴양관광지로 전망이 밝다.
교육·문화·의료·복지
전통 교육기관으로 포천향교·화산서원·용연서원이 있었다. 최초의 근대 교육기관은 1910년 영중면 영평리에 개교한 영평초등학교다. 뒤이어 1911년에는 포천초등학교가, 1920년대에는 송우·일동·영북 초등학교, 1930년대에는 관인·가산·이동·신북·청성·이곡 초등학교와 영중중학교가 차례로 문을 열었다. 2016년 기준 유치원 39개소, 초등학교 31개교, 중학교 14개교, 고등학교 6개교, 전문대학 1개교, 대학교 2개교, 대학원 11개교가 있다.
1986년 7월에 설립된 포천문화원은 6월에 유적지순례, 8월에 청소년문화강좌 등을 주관하고, 10월 군민의 날 전후 행사로 반월문화제를 개최한다.
주요행사로는 백일장, 사생대회, 사진촬영대회, 서예 및 각종 지역작품전, 각종 전시회 등이 있다. 그밖에도 반월문화제행사 후 〈입상작품집〉을 발행하며, 신문 〈포천문화사랑〉, 1991년에 첫 발간된 〈향토유적사료집〉·〈포천지역의 독립운동사〉 등 다양한 출판활동을 하여 향토문화 계승과 애향심 고취에 공헌하고 있다. 공공도서관으로 경기도립포천도서관이 있어서 군민들의 면학에 도움을 주고 있다. 그밖에 포천시여성회관과 포천종합운동장, 청성문화체육공원 등이 있다. 대표적인 민속놀이로는 가노농악이 있다. 이 민속은 연천군·가평군·철원군·포천시 일대의 농악을 대표한다. 설화로는 각종 지명유래 전설과 〈맹종이부전설〉·〈인두용신설화〉·〈국망봉과 강씨부인 전설〉 등이 전해지며, 구전되는 민요로는 노동요인 〈메나리〉·〈선소리〉를 비롯하여 〈백두산타령〉·〈영평8경노래〉·〈시집살이노래〉·〈따분따분 따분재야〉 등이 불린다.
2016년 기준 의료기관으로 종합병원 2개소, 병원 2개소, 의원 55개소, 특수병원 1개소, 요양병원 5개소, 치과병원 34개소, 한의원 22개소, 보건소 관련 의료기관 23개소가 있다. 사회복지시설은 노인여가복지시설 308개소, 노인주거복지시설 12개소, 노인의료복지시설 58개소, 재가노인복지시설 14개소, 보육시설 128개소, 아동복지시설 3개소, 장애인복지생활시설 17개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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