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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894년 평안남도 평양에 설립된 장로교회.
원래 명칭은 널다리교회였으나 1903년 예배당의 완공과 더불어 교회명을 장대현교회로 개칭했다.
장로교는 평양 개척을 시도했으나 처음에는 실패하고 1893년 1월 선교사 모펫이 데리고 온 한석진이 평양에 머물게 되면서 장로교의 평양 개척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해 5월부터는 모펫도 함께 머물면서 20여 명의 교인을 모아 널다리골에 있는 홍종대 소유의 기와집을 매입해서 예배를 드렸는데, 이것이 평양 널다리교회의 시작이다.
1900년 6월 김종섭을 장로로 장립해서 당회를 조직했으며 1901년에는 길선주와 방기창을 장로로 장립했다. 이후 교세는 날로 번창해서 1901년에는 18개의 예배처소가 설치되었으며, 1903년 남문밖교회, 1907년 산정현교회, 1909년 서문밖교회를 분립할 정도에 이르렀다. 1905년부터는 길선주를 중심으로 새벽기도회가 시작되었는데 이는 1907년의 대부흥회를 준비하는 계기가 되었다.
1907년 1월 장대현교회 목사가 된 길선주와 선교사 블레어 등의 인도로 부흥회가 개최되었으며 이 부흥회에서는 한국교회사상 미증유의 성령강림의 역사가 나타났다. 그리하여 장대현교회는 '일백만 구령운동'의 중추세력이 되었다. 그뒤 1945년 8·15해방을 맞이하면서 북한지역이 공산주의 세력 아래 놓이게 되자 장대현교회는 북한 내 반공투쟁의 중심지가 되기도 했다. 그리스도교 정당의 결당식 거행과 관련해 40여 명의 교회 지도자들이 체포된 이후 교회의 활동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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