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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90. 1. 19, 라오스 루앙 프라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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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59, 비엔티안 |
국적 | 라오스 |
요약 라오스의 정치지도자.
라오스 독립의 아버지로 여겨지는 민족주의자이다. 펫사라트는 루앙프라방 왕국의 총독인 보운 콩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동생으로는 수바나 푸마와 수파누봉이 있다. 사이공과 프랑스에서 공부했으며, 1913년 라오스로 돌아와 프랑스 보호령에 있는 루앙프라방의 공무원이 되었다. 1919년에는 원주민이 담당하는 공무원직의 총책임자가 되었고, 그후 20년 동안 프랑스 정부가 각종 공국과 주현(州縣)으로 갈라놓은 라오스를 결합시킬 수 있는 관료제도를 정립하기 위해 진력했다.
1940~41년 프랑스-타이 인도차이나 전쟁이 발발하면서 프랑스는 비엔티안을 포함한 여러 주현을 루앙프라방 왕국에 할양하고 펫사라트 총독이 총리로 있는 라오스 내각에 행정권을 부여했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일본이 항복하자 펫사라트는 프랑스가 라오스로 다시 돌아오는 것을 막기 위해 라오스가 단일한 독립왕국이라고 선포했다. 시사방봉 왕이 그를 총독직에서 축출하자 그는 비엔티안에 있는 반대세력인 라오 이사라(자유 라오스) 정부에 합류했다. 그러나 1946년 프랑스가 라오스를 재점령하자 그는 타이로 달아났다. 펫사라트는 자유 라오스 망명정부를 구성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1946년 12월에는 망명정부의 수반이 되었다.
프랑스 정부가 라오스 민족주의 진영에 양보하기 시작하자 그의 동생들은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수파누봉은 베트민과 합류하여 공산주의 정당인 파테트 라오를 결성하여 무장저항을 계속했고, 수바나 푸마는 프랑스 정부와 협력하기로 결심하고 프랑스가 후원하는 라오스 정부에 참여했다. 펫사라트는 우파와 좌파 사이의 내전을 종식시키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는 한 라오스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버티었다.
그러나 좌파와 우파 간의 화해에 대한 희망은 그가 1956년 라오스로 돌아가면서 수포로 돌아갔다. 1978년 펫사라트의 자서전 〈라오스의 철인 Iron Man of Laos〉이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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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펫사라트 라타나봉사 – 다음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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