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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747경, 몬테네그로 녜고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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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830. 10. 30(구력 10. 18), 체티녜 |
국적 | 몬테네그로 |
요약
몬테네그로의 주교 군주(vladika:1782~1830 재위).
(영). Peter Ⅰ. 정식 이름은 Petar Petrović Njegoš.
오스만 투르크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쟁취했다.
성인다운 품격을 지녔으나 무능했던 숙부 사바의 뒤를 이어 1782년에 정교일치제인 몬테네그로의 군주가 된 페타르 1세는 2년 뒤 주교 자리에 올랐다. 같은 해에 그는 오스만 투르크에 대항하는 데 도움을 준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할 목적으로 러시아를 방문했다. 그는 귀국하자마자 슈코테르의 파샤가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와 몬테네그로를 짓밟고 다니는 것을 보고 싸움에 적극적인 문벌들과 힘을 합쳐 이 침입자를 몰아냈다.
오스만 투르크와의 전쟁은 간헐적으로 벌어져 러시아나 오스트리아와 같은 강력한 동맹국들과 같이 싸울 때도 있었고 홀로 전쟁을 치를 때도 있었다. 1796년 슈코데르의 파샤가 재침입해 왔을 때 그는 병사들을 이끌고 나가 빛나는 승리를 거두었다.
파샤는 붙잡혀 목이 잘렸고 1799년 오스만 투르크의 술탄인 셀림 3세는 결국 조약을 맺고, 몬테네그로의 독립을 마지못해 인정했다. 헤르체고비나의 세르비아인들이 정착한 부르다 등 새로운 지역이 영토로 추가됨으로써 페타르의 통치기간중 몬테네그로의 영토는 2배나 넓어졌다.
나폴레옹 전쟁중 몬테네그로는 강대국들의 분쟁에 휘말렸다. 프랑스가 오스트리아와 프레스부르크 조약(1804)을 맺고 달마치야 지방을 획득하자 페타르는 코토르 만과 그 인근 도시에 대한 몬테네그로의 영유권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1807년까지는 러시아와 동맹 관계에 있었으며, 같은 목적을 위해 1813년 영국과 동맹을 맺었다.
1813년 프랑스군이 철수하자 그 해 10월 코트르 만 지역을 병합해 코트르를 1년간 왕국의 수도로 삼았으나 빈 회의(1815)의 결정에 따라 그 지역은 다시 오스트리아로 귀속되었다. 페타르는 그뒤에 2차례 더 오스만 투르크와 전쟁을 벌이고(1819, 1821) 산지 주민들간의 유혈 충돌을 해결하면서 통치 말년을 보냈다. 이같은 노력으로 공정한 군주로서의 평판은 더욱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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