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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14. 4. 25, 베네수엘라 미첼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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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베네수엘라 |
요약 베네수엘라의 군인·정치가.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을 지낸 사람으로서 그의 정권은 낭비·부패·경찰탄압, 그리고 실업률 증가 등으로 특징지어진다.
베네수엘라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페레스 히메네스는 1944년 정계에 발을 내디딘 후 1945년 10월 쿠데타와 1948년 11월 쿠데타에 참여했다. 1948년의 제2차 쿠데타가 성공한 후에 페레스 히메네스는 베네수엘라를 통치하게 된 군사혁명평의회 위원이 되었다. 1952년 12월 페레스 히메네스는 군대의 지명에 의해 임시대통령으로 취임했으며, 1953년에 그가 장악하고 있던 헌법의회에서 5년 임기(1953~58)의 대통령으로 추인되었다. 페레스 히메네스는 석유사용료 수입을 재원으로 삼아 고속도로·호텔·공장·관공서·댐 건설 등의 대규모 공공사업을 시작했으며, 각각의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중개 수수료를 받았다. 도처에 산재해 있는 비밀경찰과 대학교 휴교, 언론탄압, 치솟는 물가, 5명의 신부 투옥 사건 등은 교회와 야당들, 불만에 찬 노동자들, 그리고 행정부의 포상 대상에서 제외되었다고 느끼는 젊은 군인들을 연합하게 만들었다. 1958년 1월 어쩔 수 없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된 페레스 히메네스는 미국으로 도망갔는데, 보도에 따르면 약 2억 달러를 가지고 갔다고 한다.
1963년 페레스 히메네스는 미국정부에 의해 베네수엘라 본국으로 송환되어 정부기금횡령혐의로 재판정에 서게 되었다. 결국 5년 동안 복역한 후 석방되어 1968년 8월에 스페인으로 갔다. 1969년 페레스 히메네스는 부재중에 베네수엘라 상원의원으로 당선되었으나 그가 베네수엘라에서 등록된 투표권자가 아니었으므로 무효가 되었다. 1972년 3월 페레스 히메네스는 마드리드에서 다음 대통령선거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1972년 5월 페레스 히메네스는 카라카스로 돌아왔으나 그의 귀국이 카라카스 시에 소요사태를 야기시켰으므로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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