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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94. 8. 2, 미국 미네소타 미니애폴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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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69. 6. 24, 애리조나 투손 |
국적 | 미국 |
요약 미국의 보수적인 칼럼니스트.
그의 신랄하고도 독창적인 칼럼은 미국 전역에 걸쳐 주목을 받았다. 1944년 신문왕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의 신문 신디케이트를 통해 〈페글러가 본 세상 As Pegler Sees It〉이라는 칼럼이 전국적으로 동시 발표되었다.
그는 이 칼럼에서 대법원, 신문조합, 재벌, 조세제도, 노동조합, 많은 국내 저명인사들을 서슴없이 비판했다. 1954년 페글러는 한 비판적인 신문 칼럼의 내용 때문에 작가 퀜튼 레이놀즈로부터 명예훼손죄로 고소당했다. 레이놀즈는 그 재판에서 승소하여 징벌적 손해배상금 20만 달러를 받았는데, 이 배상금은 당시 최고의 기록이었다. 이 사건으로 자유롭게 활동하던 페글러는 상당히 위축되었다. 허스트의 신문 신디케이트는 그동안 신문에 게재되었던 그의 칼럼들을 편집하기 시작했고, 그는 1962년 칼럼을 중단했다.
페글러는 미니애폴리스와 시카고에서 활약하던 유명한 신문기자의 아들이었다. 시카고 고등학교 시절부터 그는 미국 합동통신(UP)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는 6년 동안 디모인·세인트루이스·댈러스 등지의 UP지국에서 일한 후 1916년 UP의 런던 지국으로 발령받았다. 1918, 1919년 미국 해군으로 복무한 후 〈유나이티드 뉴스 United News〉(1919~25)·〈시카고 트리뷴 Chicago Tribune〉(1925~33)에 스포츠 기사를 쓰고 편집일을 맡아보았다.
1933년초부터 그는 〈뉴욕 월드 텔레그램 New York World-Telegram〉에 〈페어 이너프 Fair Enough〉라는 칼럼을 썼다. 1941년 그는 노동 착취사건을 폭로한 공로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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