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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718년 1월 7일, 매사추세츠 세일럼빌리지(지금의 댄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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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790년 5월 29일, 미국 코네티컷 펌프레트 |
국적 | 미국 |
요약 미국 독립전쟁에 참가한 미국의 군인.
정규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으며 1740년경 코네티컷의 펌프레트로 옮긴 뒤 농사일에 손을 대 성공을 거두었다.
프렌치-인디언 전쟁에 나갔다가 인디언에게 붙잡히기도 했으나 1759년 중령 계급까지 올라갔다. 이때 변경지방을 여러 곳 탐험하면서 보여준 능력과 용감성으로 대단한 명성을 얻었다. 1775년 미국 독립전쟁이 일어나자 대륙군에 가담해 소장 계급을 달았다. 그는 1775년 6월에 벌어진 벙커힐 전투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롱아일랜드 전투에서는 사단 병력을 이끌고 브루클린에서 싸웠으나 패배했다. 1777년 5월 몽고메리 요새와 클린튼 요새를 포함해 허드슨 강 유역 고지의 방위 책임을 맡았으나 곧 두 요새를 영국군에게 내어주었다. 이때문에 군사 재판에 회부되었으나 면책받았다. 그러나 중풍으로 1779년 12월 군대에서 물러나야만 했다.
조지 워싱턴을 비롯한 대륙군 지도자들은 퍼트넘이 인디언과의 전투에서, 그리고 연대 사령관으로서 거의 전설적인 전과를 올린 것을 보고 처음에는 그에게 큰 기대를 걸고 대륙군의 사령관감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전술적인 면에서 능력이 모자라 대규모의 부대가 참가하는 작전을 제대로 계획하고 조정하지 못했으며, 워싱턴의 명령을 더디게 수행하여 전투에서의 효율성을 떨어뜨렸다. 용감하고 자신만만하고 정력적인 성격의 퍼트넘은 대중의 인기를 등에 업고 장군의 지위에 올랐으나 장군으로서는 부족한 점이 많았다. 워싱턴은 1777년 이후에는 그에게 중요한 직책을 맡기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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