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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729. 4. 13, 잉글랜드 슈롭셔 브리지노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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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811. 9. 30, 아일랜드 다운 드러모어 |
국적 | 영국 |
요약 영국의 주교, 골동품 수집가.
그의 발라드 모음집 〈고대 영국 시풍 Reliques of Ancient English Poetry〉(1765)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전통적인 노래에 대해 폭넓은 관심을 일깨웠다. 그 모음집의 근간은 너덜너덜한 15세기 발라드 사본이었는데(퍼시 폴리오로 알려짐), 이것은 퍼시가 친구 집에서 불쏘시개로 쓰려다가 발견했다. 이것에다 퍼시는 다른 많은 발라드·노래·로맨스를 추가했다.
이것은 그의 요청을 받은 친구가 도서관, 다락방, 옛 필사본 창고를 뒤진 결과이다. 읽기 쉽게 만들기 위해 원전의 형태를 희생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이 발라드의 편집 기준은 원전과 본문비교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고대 영국 시풍〉은 고대 시가의 풍부한 모음으로 '발라드 부흥'을 촉발시켰고, 낭만주의 시의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퍼시는 옥스퍼드의 크라이스트 처치에서 교육받았고, 이스턴마우디트의 노샘프턴셔(1753)와 윌비(1756)에서 살았다. 노섬벌랜드의 백작부인에게 헌정한 〈고대 영국 시풍〉으로 그녀의 후원을 얻게 되었고, 그후에 편집한 〈1512년 노섬벌랜드 백작가문의 책 The Household Book of the Earl of Northumberland in 1512〉(1768)은 이러한 종류의 선구적인 책이 되었으며 그는 백작가의 서기이자 사제가 되었다. 1778년 칼라일의 수석사제가 되었고, 1782년에는 아일랜드 드러모어의 주교가 되었다.
퍼시는 관대하고 학구적인 관심이 있어 친구가 많았다. 새뮤얼 존슨은 〈고대 영국 시풍〉을 편집하도록 격려했고, 그의 '탐구의 정확성'을 격찬했다. 시인 윌리엄 셴스턴은 퍼시와 편집계획을 함께 세웠고, 시인 토머스 와턴은 본문 비교를 위해 옥스퍼드 도서관을 뒤졌다. 퍼시는 '당대에 가장 박식한 사람'으로 알려져왔다. 중국어·히브리어·스페인어·아이슬란드어·영어로 번역한 것들과 아이슬란드의 〈에다 Edda〉를 최초로 번역한 것을 보면 그의 어학적 재질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그의 긴 편지는 지칠 줄 모르는 탐구력과, 정보 및 충고를 제공하는 데 관대하고도 통찰력이 있음을 보여주며, 그가 사실의 정확성을 추구하고 자신이 중요하다고 기억하고 있는 작품의 문맥 속에서 그 위치를 정확히 추적할 수 있음을 확인해준다. 그의 편지는 클린스 브룩스가 1946~77년에 걸쳐 7권의 책으로 편집·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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