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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루치스탄 지역에 처음으로 사람이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BC 3500년경부터이다.
BC 4000년대말 많은 이주민들이 발루치스탄에서 동쪽 인더스 강 유역으로 이주하여 하라파 같은 여러 도시 문명을 이룩했다. 그러나 인더스 문명은 BC 1500년경 갑자기 끝났고, BC 2000∼1000년경 아리아어를 쓰는 민족이 이 지역으로 이주해왔다.
BC 6∼5세기의 불교 문헌에는 인더스 강 유역에 있었던 간다라 국(國)에 대해 언급되어 있다.
BC 327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페르시아 아케메니아 제국의 변경지역을 정복하기 위해 간다라에 들어왔다. 뒤이어 BC 3∼2세기에 마우리아 제국의 영토가 되었으며, 그후 1, 2세기에는 쿠샨(쿠샤나)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힌두 문화 형성기(320∼540)에는 굽타 왕조가 인더스 강 유역을 포함한 인도 북부지역을 지배했다.
8세기에 처음으로 이슬람교도 정복자들이 발루치스탄에 들어왔고, 그뒤로 이 지역에서 그들의 활동이 활발해졌다. 13세기에 이슬람 세력이 통합되면서 델리를 중심으로 한 술탄국이 생겨나 16세기초까지 인도 대륙 대부분을 계속 지배했다. 1526∼1761년 무굴 왕조가 인도를 지배했다.
1757년 영국동인도회사가 다른 식민지 세력을 몰아낸 후 무굴 제국을 정복하여 1세기 동안 동인도회사가 인도 대부분을 지배했으나 1857년 벵골군 소속의 인도인 신병들이 반란을 일으켜 1858년 영국정부가 관할하게 되었다. 영국 식민지시대에 지금의 파키스탄(이슬람) 지역은 행정적으로 인도(대부분 힌두교 지역)의 일부였다. 인도 민족주의가 처음으로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힌두교도가 지배적이었던 인도 의회(1885)와 전(全)인도 이슬람 연맹(1906)을 통해서였다.
1857년 이후 10년간 이슬람교도들은 영국과의 협력을 추구했으나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오스만 제국이 분할되자 영국의 지배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이슬람 민족주의 지도자는 모하메드 알리 진나(1876∼1949)였다.
1940년 진나가 이끄는 이슬람 연맹은 영국령 인도를 힌두 국가(인도)와 이슬람 국가(파키스탄)로 분할하자는 의견에 찬성했다. 1947년 8월 영연방에 속한 자치령으로서 파키스탄이라는 새로운 국가가 탄생했으며 진나가 총독이 되었다.
파키스탄은 인도 영토를 사이에 두고 지리적으로 서로 떨어진 동파키스탄과 서파키스탄으로 이루어져 있다. 비교적 후진 지역인 신드, 발루치스탄, 북서변경지방이 파키스탄에 속하게 되었으며, 펀자브와 벵골은 파키스탄 지역과 인도 지역으로 갈라졌다. 한편 카슈미르는 계속 분쟁지역으로 남아 있어 이 지역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긴장이 점점 고조되면서 1965년 인도와 전면전을 벌이기도 했다.
동파키스탄에서는 벵골인 자치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으며, 마침내 1971년 동·서 파키스탄 사이에 내전이 일어났다.
인도군의 침입에 힘입어 동파키스탄은 1972년 방글라데시라는 독립국가로 분리되었으며, 서파키스탄은 파키스탄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유지했다. 1971년부터 파키스탄을 통치하던 줄피카르 알리 부토는 1977년 모하마드 지아 울 하크 장군이 주도한 군사 쿠데타로 축출되었다.
1988년 지아가 죽은 뒤 부토의 딸 베나지르가 그해 실시된 의회 선거에서 승리하여 이슬람권 국가에서 최초의 여성 총리로 취임했다. 그러나 베나지르는 친인척의 권력남용, 독직과 내각부패를 이유로 굴람 이샤크 칸 대통령 군부의 압력에 의해 1990년 8월 쫓겨났고, 그녀의 당은 보수파 연합에 패배했다.
선거에서 승리한 이슬람 민주동맹(IDA)의 지도자 나와즈 샤리프가 부토 축출 이후 세워진 과도정부에서 권력을 이양받아 파키스탄 사상 5번째 민선정부 총리로 취임했다. 그러나 1993년 3월 이샤크 칸 대통령과의 권력투쟁에서 패배한 그는 총리직에서 쫓겨났고 그후 의회해산, 내각총사퇴의 불안정한 정국이 이어지다가 다시 총리 불신임안이 불법처리되는 등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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