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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242, 니케아 제국 니케아(지금의 터키 이즈니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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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310경,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 |
국적 | 비잔틴 |
요약 13세기 비잔틴 문화권의 뛰어난 인문학자.
그가 쓴 팔라이올로구스 왕조 황제들에 대한 연대기는 그 시대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역사적 자료이다. 1262년 라틴 제국(1204 건국)이 무너지고 비잔틴 제국의 황제인 미카일 8세 팔라이올로구스가 돌아오자 파키메레스는 콘스탄티노플로 가서 그리스 정교회 성직자의 서품을 받았다. 그는 교회 일과 정치적인 업무를 돌보는 동시에 하기아소피아바실리카에 있는 성직자 학교에서 인문학을 가르쳤다.
동방 정교회와 라틴 교회의 통합에 크게 반대했던 파키메레스는 교회의 통합을 지지한 미카일 8세와 통합을 반대한 안드로니쿠스 2세, 즉 2명의 팔라이올로구스 왕조 황제들의 통치시대 사건들을 신중하게 중립을 지키며 기록했다.
〈동로마사 Hrōmaikē historia〉라는 제목이 붙은 이 13권짜리 연대기는 게오르기오스 아크로폴리테스의 책을 바탕으로 계속 내용을 덧붙여나간 것으로 가장 대표적인 파키메레스의 저작이다. 목격한 사실을 독특한 방식으로 기록해나간 이 〈동로마사〉는 거기에 실린 사건들이 신학적으로 볼 때 어떤 특징을 가지는가에 대해 특히 강조하고 있으며, 그뒤에 나온 비잔틴 문화권의 다른 연대기들도 이같은 방식을 따르고 있다. 그는 2명의 팔라이올로구스 왕조 황제들이 통치했던 시대를 성직자들의 자치를 추구하는 동방 정교회와 교황의 절대성을 추구하는 로마 가톨릭의 분쟁이라는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다. 〈동로마사〉는 과장된 문체에도 불구하고 비잔티움에 대한 라틴 제국의 군사작전과 슬라브족과 투르크족의 침입에 대비한 국경방위선의 구축, 그리고 중앙집권화한 제국의 권력을 이용해 토지문서를 교묘히 조작해냄으로써 비잔틴 제국의 봉건귀족제가 성장해가는 것을 기록했다는 데에 가치가 있다.
파키메레스는 삼위일체설에 대한 신학 논문도 썼으며 성부·성자·성령의 관계에 대해서 라틴 제국 교회와 동방 정교회가 서로 타협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성직자 학교에서 그가 했던 강의는 수학·음악·기하학·천문학에 대한 고전적인 형태의 안내서라고 할 수 있는 〈수리학 개론 Systagma tōn tessarōn mathēmatōn〉의 저술로 발전했다. 아라비아 숫자를 사용한 혁신적인 저서인 이 〈수리학 개론〉은 그리스-비잔틴 문화권에서 가장 정평 있는 학술서가 되었다.
파키메레스가 남긴 다른 저서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대한 개론서가 있는데 이 책은 논리학에 대한 부분만 유일하게 출간되었다. 이외에도 디오니시오스(Dionysios the Areopagite)가 쓴 것처럼 보이는 문장을 쉽게 설명해놓은 것도 있으며 몇 편의 웅변연습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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