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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베네치아의 명문(名門).
Partecipazio라고도 씀.
많은 주교 및 성직자와 810~942년에 도제(총독) 7명을 배출했다. 첫번째 총독은 우르수스(또는 오르소 1세, 727~739 재임)이지만 이 가문의 진정한 창시자는 아녤로 파르테치아코(827 죽음)이다. 샤를마뉴의 아들이며 이탈리아 프랑크족의 왕인 페팽을 베네치아의 실질적인 지배자로 받드는 파벌에 반대하여 그는 정부를 말라모코(지금의 리도) 섬에서 오늘날 베네치아가 있는 리알토 군도로 옮겼다.
이곳은 정치적 독립을 지키기가 보다 쉬웠다. 그는 많은 다리를 놓아 섬들을 연결시키고 최초의 총독 궁전을 짓기 시작했다. 정치가였을 뿐만 아니라 상인이기도 했던 그는 비잔틴 황제인 아르메니아 출신의 레오 5세와 미카일 2세에게서 중요한 상업적 특권을 얻었다. 아들인 주스티니아노와 조반니 1세가 뒤를 이었는데 주스티니아노는 막대한 양의 후추와 그밖의 다른 향료를 물려주는 유언장으로 인해 경제사가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이 유언장의 내용으로 보아 베네치아는 이미 9세기초에 레반트와 대규모 교역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주스티니아노가 다스리던 때인 828년 성 마르코의 유물이 알렉산드리아에서 밀반입되자 그는 이 유물들을 소장하기 위해 지금의 산마르코 대성당 자리에 바실리카 교회당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오르소 2세(864~881 재위) 때는 민족교회를 재조직하는 등 많은 개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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