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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797경, 미국 뉴욕 얼스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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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883. 11. 26, 미시간 배틀크리크 |
국적 | 미국 |
요약 미국의 흑인 전도사·사회개혁가. 본명은 Isabella Van Wagener.
종교적 열정을 바탕으로 노예제폐지와 여권운동에 힘썼다. 소저너 트루스는 노예로 태어나 어린시절 주인들의 학대를 받으며 자랐다. 1810~27년 같은 처지의 노예 토머스와의 사이에 5명의 아이를 낳았다. 1827년 노예제가 폐지되기 직전 아이작 밴 와그너에게 노예로 팔렸으나 해방되었다.
퀘이커교도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불법적으로 남부에 팔려간 아들을 찾기 위한 법정투쟁을 벌였으며, 1829년경 가장 어린 두 아이와 함께 뉴욕으로 가서 가정부로 생계를 유지했다. 소저너 트루스는 어린시절에 하느님의 형상과 음성을 경험한 뒤 신앙에 귀의했다. 뉴욕 시에서 열성적인 전도사인 일라이저 피어슨과 알게 된 뒤, 거리에서의 설교활동 외에도 피어슨의 검약공동체에 가입, 나중에는 그의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
1843년 뉴욕을 떠난 뒤부터 소저너 트루스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전국을 순회하라'는 계시에 따라 곳곳을 다니면서 야외집회와 교회·가두에서 노래·설교를 하거나 논쟁을 벌였으며, 사람들에게 성서의 전갈인 신의 선함과 모든 인간은 형제라는 사상을 받아들이도록 전했다. 같은 해 매사추세츠 주 노샘프턴의 이상주의적 공동체에서 인종차별 폐지운동을 접하게 되면서 인종차별 폐지를 주제로 전국 순회 설교를 했다. 1850년 중서부 여러 곳을 순회했는데, 좋은 평판을 얻어 많은 군중이 모였다.
소저너 트루스는 올리버 길버트에게 구술하여 쓴 〈소저너 트루스의 설교 The Narrative of Sojourner Truth〉를 출판하여 생계를 유지했다. 1850년대초 여권운동을 접하게 되었으며 저명한 여성 지도자 루크리셔 모트의 영향을 받아 여성참정권 운동 집회에 참여했다. 1850년대 트루스는 미시간 주 배틀크리크에 정착, 남북전쟁 초기에 흑인 지원부대를 조직했으며, 1864년 워싱턴 D. C.로 가서 전차에 흑인과 백인이 분승하는 것을 폐지하는 데 앞장선 공로로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으로부터 백악관에 초대받았다. 같은 해 트루스는 전국자유인구제협회로부터 노예의 근절과 재정착문제를 상담하는 역으로 임명되었다.
1870년대말 다수의 해방노예가 캔자스와 미주리로 이주하는 것을 도왔고, 1875년 배틀크리크로 돌아와 여생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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