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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678. 6. 6, 프랑스 베르사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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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737. 12. 1, 랑부예 |
국적 | 프랑스 |
요약 프랑스의 해군제독.
루이 14세와 그의 정부 마담 드 몽테스팡 사이에서 태어났다. 1681년 적자로 인정받았으며 5세에 해군제독이 되었고 12세 때 아버지를 수행해 네덜란드로 갔다. 이곳에서 노뮈르 포위공격 때 부상을 당했다.
1702년 루이 14세의 손자의 권리, 즉 스페인의 펠리페 5세로 인정받을 권리를 획득하기 위해 소함대의 지휘를 맡아 메시나와 팔레르모에서 전투를 벌였다. 1704년 8월 24일 말라가에서 영국과 벌인 전투는 승패가 가려지지 않았으나 영국 쪽의 많은 사상자를 냈다. 모든 전투에서 그는 대단한 용맹을 떨쳤다.
1723년 공드랭 여후작 마리 빅투아레 소피 드 노아유와 결혼했는데 그녀는 궁정에서 가장 아름답고 지적인 여성으로 명성이 자자했으며 유명한 살롱을 주관했다. 그의 아버지는 자신의 서출 자식들을 친왕자로 삼아 편애하면서 그들에게 귀족들보다 높은 지위를 부여했다. 이러한 조치는 귀족사회의 커다란 불만을 불러일으켰다. 툴루즈는 형제인 멘 공작의 파벌에 속해 있었으나 궁정의 음모에는 관심이 없었고 섭정회의의 구성원으로 남아(1715~23) 섭정회의로부터 해군 재건에 대한 승인을 얻어냈다.
툴루즈는 궁정에서 존경을 받았다. 회고록 집필자 루이 드 생 시몽은 툴루즈를 "온화하고 상냥한 태도와, 선량하고 관대한 느낌으로 남의 마음을 사로잡을 줄 아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툴루즈의 딸은 샤르트르 공작과 결혼해 후에 국왕이 된 루이 필리프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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